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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태극기만 가득" 1950년 보스턴 마라톤의 기적
2025-08-02 19:41:14
김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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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 우승을 차지해 시상식 단상에 오른 한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손에 든 참나무 묘목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린다. 세월이 흘렀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손기정이다.

지난 25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은 손기정을 주제로 한 특별전 '두 발로 세계를 제패하다'를 열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조국을 가슴에 품고 세계를 달린 손기정 선수를 기념하기 위해서다. 전시는 오는 12월 28일까지 올해 하반기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한 8월이 우리 곁에 다시 돌아온 것을 환영하며, 이번 특별전을 토대로 그의 이야기를 재조명하고자 한다(25일 특별전에 직접 방문해 해설자의 설명 듣고 이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비극의 시대, 마라토너로 자질을 드러내다


손기정은 1912년 8월 29일(음력)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났다. 일본이 대한제국의 국권을 박탈한 것이 1910년이므로 그는 일제강점기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이다.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스케이트처럼 돈이 많이 드는 운동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소년은 달리기를 선택한다.

달리기에 대한 열정은 손기정을 1931년 조선 신궁대회로 이끌었다. 훈련 지역 대표(평안북도 대표)로 5000m 대회에 참가한 그는 2위를 차지한다. 손기정과 마라톤의 만남은 이 대회에서 시작된다. 그는 이 대회에서 처음 마라톤을 접했기 때문이다. 5000m보다 더 긴 거리를 달리는 종목이 있다는 것에 흥미를 느낀 소년은 이때부터 마라톤 인생을 시작한다.

다음 해인 1932년 동아일보 주최 경영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손기정은 마라토너로 처음 이 경기에 참여했고 2위로 입상한다. 당시 20세였던 그는 육상 명문 양정고보(양정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가 여러 대회에서 마라톤 선수로 두각을 드러낸다.

1935년 그는 마라톤 대회에서 연달아 우승을 하며 실력을 입증했다. 일본 도쿄 순회 마라톤코스 개설기념대회, 조선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것이다. 1936년 마침내 그는 베를린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참가하게 된다.

한국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지만


1936년 8월 9일, 베를린에서 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마라톤 경기가 진행됐다. 결승선에 가장 먼저 들어온 선수는 다름 아닌 손기정이었다. 두 번째로 영국 선수인 어니 하퍼가 결승선을 통과했고, 남승룡이 세 번째로 들어왔다. 남승룡은 손기정과 함께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한 또 다른 한국인 선수였다.

2시간 29분 19.2초

이날 손기정 선수가 세운 기록이다. 당시 공식 세계 기록이었다. 한국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그가 달리기에 대한 열정으로 지금까지 쌓아온 노력이 세계 무대에서 결실을 이룬 순간이었다.

세계 언론사들은 올림픽 현장을 생생하게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경기 당시 손기정 선수의 모습을 묘사해 신문 기사로 내보내기도 했다. 1936년 8월 10일 자 기사에선 결승선 앞에 다다른 손기정의 모습을 "그의 얼굴에는 긴장이나 고통의 기색조차 없었고 표정은 마치 대리석 가면처럼 굳어 있었다"고 보도했다. "오직 그는 앞만 보고 달렸고 관중들의 엄청난 환호조차 그를 흔들 수 없었다"라는 대목에서 굳건하게 달리는 손기정 선수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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