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더워서 아무것도 하기 싫네요. 햇볕을 피해 꼼지락거리지만 금세 지칩니다. 지친 몸은 먹는 것조차 노동이라 느끼는 것 같아요. 만사 귀찮아져 주방 앞에서 서성이기만 합니다. 이럴 때 상추에 쌈장을 척 얹어 씹으면 입맛이 돌아올 것도 같은데, 어느덧 텃밭 채소는 쇠어 가고 있습니다.
상추는 노란 꽃을 피우고 그 옆에서 자라는 치커리는 보랏빛 꽃을, 고수는 흰 꽃을 피웁니다. 먹을 것이라는 콩깍지가 씌어서 그렇지, 꽃밭에서 만났으면 몰라봤을 겁니다. 보통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시기가 식물의 가장 활동적인 절정기라고 여기지요? 그런데 꽃핀 상추는 한 물간 채소입니다.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잎을 내는 동안엔 성장이 삶의 의미였고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긴 시간 햇살과 바람, 비를 온몸으로 맞고 나니 자신을, 자신의 삶을 지키는 게 간단치 않게 되었습니다. 언제 뽑혀 나가게 될지 모르는 처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