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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옹심이는 알겠는데 붕생이는 뭐지?
2025-08-02 19:28:30
전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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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여름이 오면 자연스레 시골집으로 향한다. 예전에는 여름만 되면 해외나 제주도 같은 먼 곳을 찾곤 했다. 새로운 풍경, 낯선 언어 그 나름의 설렘이 좋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멀리 떠나는 일이 피곤하게 느껴졌다. 짐 싸는 것도, 공항 가는 것도 귀찮아져 어느 순간부터는 가까운 곳이 더 좋아졌고, 그렇게 매년 여름 휴가를 시골집에서 보낸다.

시골은 특별한 관광지도 없고 볼거리가 넘치는 풍경도 없다. 하지만 그곳엔 엄마가 있다. 엄마가 부엌에서 흘리는 칼질 소리와 퍼지는 감자 냄새. 그리고 이웃 어르신들이 "왔나, 오래 있다 가" 하시며 반갑게 건네는 인사. 그 순간 순간이 내게는 그 어떤 여행지보다 편안하고 따뜻한 위로가 된다.

시골집 앞에 쌓인 20kg 감자 일곱 박스


올해 여름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골집에 도착하니 작은 마당에는 고추, 상추, 오이, 가지 등 손수 키운 채소들이 무럭무럭 자라 있었다. 이번에는 토마토까지 주렁주렁 달려 그야말로 대농이었다. 다른 한쪽에는 20kg 감자 상자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무려 일곱 박스. 이웃이 농사지은 걸 주기도 했고, 엄마가 이웃들과의 정 때문에 일부러 사준 것도 있었다.

"엄마, 이렇게 많아도 괜찮아?" 하고 물으니, 엄마는 "어쩌겠니. 이웃이 줬는데 안 받을 수도 없고, 조금씩 사다 보니 이렇게 됐지 뭐" 하며 웃으신다.

감자는 여름 초입, 장마 전후로 수확된다. 바로 지금이 감자의 계절이다. 막 캐낸 감자는 껍질이 얇고 수분이 많아 익히거나 부치면 속살이 촉촉하게 퍼지고 고소한 맛이 배어 난다. 그래서 감자는 그 자체로도 훌륭한 음식 재료지만 제철에는 그냥 구워도, 쪄도, 부쳐도 맛이 깊다. 감자가 제철인 이맘때가 되면 엄마는 늘 말씀하신다.

"감자 나왔으니 옹심이, 붕생이 해야지."

이번에도 어김없이 감자 붕생이를 해 먹자고 하셨다. 감자 옹심이는 감자를 강판에 곱게 갈아 수분을 짜내고 전분기를 모아 동그랗게 빚은 다음 육수에 넣어 끓인 음식이다. 쫄깃하면서도 속은 부드럽고, 국물은 구수하다. 붕생이는 옹심이 재료와 같지만, 두툼하게 빚어 감자와 함께 쪄내는 음식이다.

날이 무더워도 엄마의 손놀림은 정교하고 빠르다. 엄마는 굵은 감자 수십 개를 꺼내 차곡차곡 껍질을 벗긴다. 빠른 칼질로 감자를 물에 씻고, 곧바로 강판 위에 갈기 시작하신다. 감자를 강판에 갈 때마다 흰빛 감자즙이 손끝에 따스하게 전해진다. 감자의 향기가 주방 안에 퍼지면 나는 어릴 적 엄마가 감자 갈던 모습을 떠올린다. 많은 양의 감자를 갈아 옹심이와 붕생이를 만들다 보면 찾아온 이웃들과 함께 먹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엄마는 둘이 먹기엔 많은 양의 감자를 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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