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엑시트>로 화려하게 데뷔한 이상근 감독이 두 번째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로 6년 만의 극장 개봉영화를 선보인다. <기생충>으로 한국 문화의 저력을 세계에 알리고 극장으로 관객을 불러 모으던 마지막 순간이다. 되돌아보면 몇 개월 뒤 벌어질 일은 한 치 앞도 모른 채 즐겼다.
그리고 6년 뒤, 관객 수 사상 최저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 극장 사정을 뚫고 이상근 감독이 돌아왔다. 팬데믹이 야속할 만도 한데 오히려 시간을 벌었다며 성찰의 시간으로 쓴 듯 보였다. 공개를 앞두고 있는 시기, 흥분보다는 진지함으로 벌어질 일을 낙관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엑시트>의 주역 조정석이 앞서 <좀비딸>로 예열해 둔 흥행 열차에 탑승을 앞둔 이상근 감독을 만났다.
다음은 지난 8일 삼청동의 카페에서 이상근 감독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글이다.
차기작 6년이나 걸린 이유
-2019년 <엑시트>가 940만 관객을 동원했다. 차기작이 6년이나 걸린 이유와, 2022년에 촬영해 3년만에 선보이는 이유가 궁금하다.
"일단 제가 느린 사람이기도 했다. 물론 <엑시트>의 결과도 좋았으니까 다음 작품을 빨리 선보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하지만 몇 개월 후 코로나가 터지면서 모든 게 멈춰버렸다. 한국 영화 호황을 입은 마지막 수혜자로서 할 말도 없는 거다. 그 시기에 프로젝트를 가동하며 여러 제약이 있었다. 해외 촬영도 어렵지, 영화를 만들고도 극장 상황이 좋지 못해 개봉일도 몰라 불안했다. 그래서 오히려 단단해지는 시간을 갖자고 생각했다. 상황에 맞게 변주하는 게 사람의 일이 아닐까 싶었던 거다. 늦더라도 멋지게 등장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 기다렸다. 짧은 시간 내에 다작을 내놓기보다, 좀 더 다져진 상태에서 좋은 작품을 선보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22년 촬영 후 오랜 시간 편집과 후반작업을 거쳤다. 어떻게 보면 다 필연이고 인연이라는 생각도 든다."
-기자간담회를 통해 2014년 한 달 만에 쓴 고초를 바탕으로 했다고 밝혔다. 원작 영상화가 잦은 상황에서 귀한 오리지널 시나리오다.
"2014년에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의 한계를 느끼고 독하게 마음먹고 쓴 시나리오다. 사람이 낭떠러지에 다다르고 절박해지면 하늘도 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감춰진 필살기나 초인적인 능력이 발휘된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이 시나리오도 데뷔하겠다는 마음이 컸다. (웃음) 부모님은 밤마다 자는 절 깨워서 '어떻게 할 거냐' 물으시면서 이때까지 못 쓰면 '관둬라'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결국 그때 시한이 정해지면서 여러 압박감에 스터디 카페 구석에서 볶음밥 시켜 먹으면서 한 달 만에 열심히 썼던 거다. 물론 제작은 되지 못했지만 나도 한 달 만에 뭔가 쓸 수 있구나를 깨달았고, 이후 작업하는데 많은 훈련이 되었다.
감독 지망생 시절 그러니까 한 10년 정도 혼자 카페로 출퇴근하는 과정이 떠오른다. 이 정도 되면 가족이 걱정하는 마음은 알지만 타박이 커진다. 주변에서 계속 잘 되는 친구들의 소식으로 초조함도 생긴다. 사실 날이 서 있을 때는 주변의 위로가 비난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내 잘못이라고 자책했었다. 지나고 보니 자신을 가장 사랑해 줘야 하는 사람은 나인데 너무 학대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 옛날에는 그래도 괜찮았잖아' 같은 자기최면을 걸면서 자신을 믿어보자 생각했다."
- <엑시트>보다 먼저 쓴 시나리오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초고 <2시의 데이트>(가제)와 지금 영화와는 전혀 다른건가.
"이후 모든 게 잘 안돼서 전투적으로 쓴 게 <엑시트>였다. 제작사와 함께 잘 만들어서 좋은 결과를 얻어냈다. 이후 팬데믹이 찾아왔고 잠시 멈추게 되면서 시나리오 폴더 리스트를 들여다봤다. 제목이 숫자로 시작하다 보니 맨 위에 있던 <2시의 데이트>가 계속 눈에 밟혔던 거다. 다시 열어서 읽어보니 예전 기억과 많이 달랐고, <엑시트>를 해보니까 제작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좀 알겠더라. 수정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이 보여서 설정도 바꾸고 이야기도 틀어서 완전히 다시 쓴 구 데뷔작이라고 보면 된다. 원래 장수(성동일) 캐릭터도 아빠가 아니라 엄마였다. 밤선지의 설정도 없었는데 어쩌면 묵힌 시나리오의 한을 풀어준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