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에 가면 시장에서 생선을 구워주는 곳이 있던데, 혹시 가봤냐? 반건조 생선을 숯불에 노릇하게 구워서 맛나게 먹더라."
'그곳에 가고 싶다'는 아버님만의 표현이다. KBS1 프로그램 <6시 내 고향>에서 생선을 맛깔나게 구워주는 방송을 보셨나 보다.
7년 전 아버님은 35년 직장 생활을 끝으로 정년퇴직하셨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드시고 하루를 시작하신다. 퇴직 후 찾아오는 공허함으로 무기력증을 느끼실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버님은 마을 소일거리를 찾아 몸을 움직이셨고 천천히 '쉼'을 찾아가고 계신다.
지금 아버님의 유일한 즐거움은 <6시 내 고향>을 시청하며 TV 속 세상을 함께 여행하는 것이다.
"지리산 뱀산골계곡이라고 있는데, 계곡물이 시원해 보이더라."
무더위에도 지리산 뱀산골계곡에서 사람들이 덜덜 떨면서 물놀이하는 모습이 시원해 보였다고 부러운 듯 말씀하셨다.
"아버님, 지리산 뱀산골 계곡에 발 한 번 담가 보실래요?"
그렇게 <6시 내 고향> 추천 여행지가 우리 가족의 여름휴가 장소가 된 지가 벌써 5~6년 정도 되었다. 지난 6월 말에 2박 3일로 떠난 여행지는 사람 냄새 나는 시골 장터에, 아버님이 좋아하는 생선구이가 유명하다는 '전라남도 고흥'이다. TV를 보시면서 혹시 잊을까 메모지에 적어두신 아버님이시다.
TV에 나오는 생선구이 먹으러 떠난 여행
아침 6시에 출발해서 2시간을 달려 공주 '유구 수국 축제'에 도착했다. 수국 축제 오픈 날이니 잠시 구경하고 가자는 남편, 수국을 좋아하는 나를 위한 배려였다. 아버님은 조용히 차에서 내려 언제나처럼 어머님보다 앞서 걸어가셨다.
"아버님, 같이 가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기다려주시는 줄 알았는데 다시 앞으로 걸어가셨다. "아버님, 저 좀 보세요" 내가 무얼 할지 아시는지 여유롭게 뒤를 보시고 잠시 어색한 포즈도 취해주셨다. 수국 꽃 사이 아버님 모습을 사진에 담아 보았다.
처음 아버님, 어머님과의 여행은 어색하고 낯설어서 사진 한 장 찍는 것도 쉽지 않았다. 조용히 뒤를 따르거나 최대한 멀리 떨어져 걸었다. 함께하는 여행이 늘면서 친근함과 편안함은 자연스럽게 몸에 장착되었다.
다시 차를 몰아 어촌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고흥에 도착해 생선구이로 유명한 '고흥 전통시장'으로 향했다.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옛 시장 모습에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생선을 숯불에 굽고 있는 시장 풍경이 정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