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그랬어요. 집회 나가려고 준비할 때, 요즘 너는 그럴 때 애가 반짝이더라. 보통 이런 말을 들을 때 상황은 사랑이거든요. 사람이든 대상이든, 어떤 무언가에 빠졌을 때. 그런데 한번 잃어보니까 민주주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죠."
묘선씨의 설명은 의외였다. 화가 나서 찾은 광장이 민주주의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는 과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가람씨도 말을 보탰다.
"어렸을 땐 우리나라에 문제가 많고, 다른 나라로 가고 싶다고 얘기했는데요. 위기가 터졌을 때 나라를 지킨 걸 보니 생각보다 이 나라를 많이 사랑했더라고요."
지난해 겨울 계엄이 선포되던 날 누군가는 말했다. 역사는 기억하고 기록하는 자의 것이라고. 그녀들은 인터뷰에 나서게 된 동기를 담담하게 말했다.
"윤석열 파면을 이끌어 낸 광장을 만든 주체는 20대·30대 여성이었잖아요? 당사자이자 목격자로서 저도 기록을 남기고 싶었어요."
지난 6월 15일 서울시 종로구에서 형가람(25),이묘선(25)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동갑내기다. 99년생 토끼띠. 윤석열 파면을 외치며 광장에서 만난 사이다.
광장에서 바라본 승리의 순간이 길지는 않았다. 이따금 우울하고 무기력한 일상의 시간도 시작되었다. 묘선씨는 물먹은 솜처럼 가라앉았다고 비유했는데 그에 대한 이유를, "비상했던 지난 겨울에 살기 위해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끌어다 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1대 대선이 끝나고 국민주권정부가 들어선 지 한 달, 아직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많다. 새로운 정부에 대한 바람은 투표 전후의 아쉬움부터 시작했다
"(선거에 출마했던)이 사람들은 우리의 눈치는 안 보는 걸까요?"
"광장에 있던 우리를 지워버린 것 같아서 열이 받기도 했어요."
21대 대통령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쏟아낸 공약들도 어느새 뒤안길로 사라졌다. 후보 중 여성은 없었다. 성평등과 여성 의제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방송 토론 과정에서 부적절한 표현으로 사회적인 물의를 빚은 후보도 있었다. 이준석 의원에 대한 제명 청원은 4일 60만을 돌파했다.
"잘못된 성에 대한 고정적 관념도 깨야 하고 여자를 사람으로 보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결국 우리가 바라는 건 잘 공존하는 것이고, 페미니즘이란 것도 평등을 말하는 거잖아요? 공격보다는 서로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지점들이 아닐까요?"
여전히 갈 길이 멀고 차근차근 나아가야 하는데, 이게 맞을까 불안함을 느꼈다고도 했다. 마치 광장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핸드폰으로 봤을 때 무기력과 우울함을 느꼈던 것처럼 정치의 속도는 마음 속의 바람을 따라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