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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 없이 춤을 추듯... 블루베리 파이 이렇게도 만듭니다
2025-07-05 18:22:14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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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내가 사는 서울 성동구에서 대여해 주는 텃밭을 신청했다. 운 좋게 당첨되어 3평 남짓한 땅을 배정받았다. 3월 초에는 땅을 갈아엎고 퇴비를 주었고 4월 한식(4월 5일) 지나 상추와 방울토마토, 오이와 가지, 호박과 수박 모종을 심었다. 틈틈이 잡초를 뽑고 물을 주었더니 4월 말부터 상추를 수확할 수 있었다.

5월 초에 방울토마토에 열매가 맺힌 걸 확인했고 5월 말이 되자 오이와 호박, 가지에 새끼손가락 한 마디 만한 열매가 달렸다. 6월부터는 오이와 호박, 가지를 수확해 먹는다. 오이는 깨끗하게 씻어 총총총 잘라 그냥 먹어도 은은한 단맛이 입안을 채운다. 사 먹는 오이와는 맛의 농도가 다르다. 땅의 기운이랄까, 태양의 강렬함이 응축된 맛이다.

작물을 키우고 그걸 따 먹는 재미와 맛까지 알게 된 터에 지난 주말엔 블루베리를 따러 오라는 언니의 연락을 받았다. 언니는 집 앞에 텃밭을 가꾼 지 오래고 그 텃밭에는 블루베리 나무 대여섯 그루가 있어 이즈음이면 블루베리 수확으로 바쁘다. 주말 사이 집을 비운다며 시간이 되면 와서 따가라고 했다. 핸드폰으로 전송된 사진 속 블루베리 알이 보랏빛으로 탐스러웠다.

블루베리를 따러 가려면 반나절 사이 왕복 3시간 거리를 오가야 했다. 예전이라면 비효율적으로 여겨져 사양했을 일. 잠시 고민하다 집을 나섰다. 블루베리 과실을 얻는 것보다 나무에 매달린 열매를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생명의 기운을 느끼고 싶었다. 한 해를 기다린 열매를 때를 놓쳐 땅에 떨어지게 하는 것도 마음이 아팠다. 텃밭 농부 3개월 차, 수확의 맛을 알게 된 이의 변화다.

목적이 바뀌면 가치도 바뀐다


목적이 바뀌면 가치도 바뀐다고, '텃밭을 가꾸는 시인' 긴이로 나쓰로는 말했다. 가치가 바뀌면 어떤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싫어하는 것도 소중해지고 꺼리던 일도 하고 싶은 게 된다. 그걸 경험하면 삶의 모든 순간에 변화의 가능성이 있음을 알게 된다.

변화란 꼭 엄청난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살펴보면 우연한 기회, 뜻밖의 만남이 자연스러운 변화로 이어진 일이 더 많다. 비효율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귀찮음을 무릅쓰며 블루베리를 따러 가는 나 자신을 보며 스스로도 놀랐다. 자연이 맺어주는 생명의 가치를 알아 그걸 귀하게 여기는 내가 좋았다. 그런 나를 보랏빛 열매들이 싱그럽게 맞아주었다.

블루베리는 보라색이 짙어질수록 희고 부연 막이 생긴다. 그러한 변화도 신비로웠다. 안으로 짙어질수록 겉면은 흐려진다니. 외부로 강렬함을 내뿜는 대신 내면으로 깊숙이 모아내는 모습은 겸허하고 자족적인 아름다움처럼 보였다. 열매 하나하나를 조심스레 따며 손가락 끝에 닿는 감촉을 음미했다. 단단한 아름다움이라는 감촉, 나무 한 그루가 한 해 동안 그러모은 힘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블루베리는 흙과 공기, 햇빛과 바람,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힘껏 빨아들여 자신을 키운 뒤 그 삶의 형태를 열매로 지어낸다. 그걸 우리에게 선물한다. 생명을 지니고 산다는 건 이런 의미구나 생각했다.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배워 열심히 성장하고 가장 좋은 내가 되기. 맘껏 나로 자라 건강하게 존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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