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크
오마이뉴스
"학원 가기 싫다"는 아이 말에 어른들이 자주 놓치는 것
2025-06-25 11:58:51
김규하
  •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 카카오톡으로 공유하기
  • 트위터로 공유하기
  • url 보내기
나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2학년 딸을 둔 두 아이 아빠이자, 아동권리옹호를 다루는 비영리단체에서 15년째 일하고 있는 활동가다.

우리 사회 안에서 아동이라는 존재가 어떤 권리를 갖는지, 그리고 그 권리가 어떻게 훼손되고 있는지를 모니터링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콘텐츠를 만든다. 만약 제도적으로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정책 제안을 통해 사회 변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그런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목소리에 더 민감해지려 노력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특히 부모로서의 일상에서는 그 노력이 자주 흔들린다.

막상 내 집에서는, 내 아이들의 경우엔 아이의 말에 충분히 귀 기울이지 못하는 순간이 많다. 가장 가까운 존재일수록 오히려 더 쉽게 넘겨버리게 된다. '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내심 '판단'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듣는다는 착각, 판단의 습관


5학년 아들은 영어학원과 농구교실 두 개의 학원을 다닌다. 며칠 전 아들은 내 눈을 마주치지도 않은 채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늘은 농구 배우러 가기 싫어."

사실 농구를 배우는 날이면 유난히 더 자주 그런 말을 하곤 했기에, 나는 습관처럼 듣고 또 말했다.

"싫어도 가야지. 약속했잖아."

아이의 말은 그렇게 단칼에 잘렸다. 바쁘다는 핑계로 왜 싫은지, 무엇이 부담스러운지 묻지 않았다. 그저 '아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과, 어른으로서 지켜야 한다고 믿는 내 기준이 먼저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그런 논리를 앞세웠다.

그 말에는 사실 나 스스로를 향한 불안도 들어 있었다. 아이가 책임감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지금의 작은 선택이 나중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좋은 부모라면 이렇게 말해야 한다'는 생각도 무의식처럼 작동했던 것 같다.

아이를 걱정한답시고, 결국은 내 불안을 아이에게 떠넘긴 꼴이었다. 그 순간 나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내가 기대하는 모습에 맞추려 했던 것이다.

그날 저녁, 아이는 평소처럼 수다를 떨지 않았다. 밥을 먹는 내내 말이 없었다. 평소라면 학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친구랑 뭐 하고 놀았는지를 재잘재잘 신나서 이야기하던 아이였다.

나는 그 침묵이 불편했지만, 그 순간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뭔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이렇게 말했다.

전체 내용보기
주요뉴스
0포인트가 적립되었습니다.
로그인하시면
뉴스조회시 포인트를 얻을수 있습니다.
로그인하시겠습니까?
로그인하기 그냥볼래요
맨 위로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