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처음'이 궁금한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된 걸까? 궁금해지는 이야기들이. '다음 추석에는 두발자전거를 타고 집에 오라'는 할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페달을 밟는 열살 민재의 이야기가 담긴 동화 <학교 운동장에 보름달이 뜨면>도 그랬다.
나는 뭔가 간절하게 바라는 게 있을 때마다 보름달을 보며 빌었다. 계획 임신에 자꾸 실패하던 첫 임신 때도, 치료약을 먹느라 둘째 갖는 일을 4년이나 미뤘던 때도 희망을 버릴 수가 없어 보름달이 뜰 때마다 빌었다.
"예쁜 아이를 갖게 해주세요."
그때마다 보름달은 내 소원을 들어줬다. 보름달처럼 환하고 밝은 두 아이가 내게로 왔다. 그 후로 나는 보름달 효험을 믿는 사람이 됐다. <학교 운동장에 보름달이 뜨면>이라는 책 제목에 솔깃한 건 그래서였다. 궁금했다. 보름달이 뜨면 뭐, 뭔데?
사실 나는 이 이야기를 몇 년 전에 미리 봤다. 잘 알고 지냈던 배지영 작가가 짤막하게 쓴 초고를 보여줬다. 책을 읽으면서 어디에서 본 듯 했던 이유다. 배 작가는 그때 내게 보여준 원고지 46매 원고를 220매 정도로 고쳐썼다. 기존 이야기에 '개미 똥구멍 냄새, 쫑찡이, 도둑게, 때 목걸이' 같은, 작가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써 넣었다고 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내가 궁금했던 '책의 처음'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마치 내가 궁금해할 것을 알았다는 듯 작가는 114페이지에 있는 '작가의 말'에 밝혀 두었다.
텅 빈 학교 운동장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하던 작가가 어느 날 우연히 혼자 자전거를 타는 할머니를 목격하고는 생각했단다. '보름달 뜬 밤에 두발자전거를 배우면 무조건 탈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자란 아이들도 있긴 있겠지'라고. 봉숭아물을 들인 손톱이 첫눈이 올 때까지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는 사람들처럼.
<학교 운동장에 보름달이 뜨면>(2025년 5월 출간)은 <내 꿈은 조퇴>, <나는 진정한 열 살>, <범인은 바로 책이야>에 이른 배 작가의 네 번째 동화다. 지난 16일 배 작가와 전북 군산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내 모습 투영된 주인공들
- 배 작가의 동화에는 예의 바른 어린이가 아닌가 하면 또 어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아이지만 마음이 사려 깊은,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아이가 매번 등장하는 것 같다. 이번 소설의 '민재'도 그렇다.
"그건 내 모습이 투영된 것 같다. 자랄 때 조금 버릇없이(?) 컸고 지금도 나이 많은 자매들에게 언니라는 호칭을 잘 쓰지 않는다. 엄마는 나의 버릇없음을 허용해줬고 나도 엄마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필 줄 아는 어린이였다."
- 개인적으로는 나는 아이들을 키울 때 예의 없는 것, 버릇 없는 걸 잘 못 보는 편인데... 작가가 동화에서 쓴 엄마의 모습은 그런 걸 좀 많이 허용하는 듯 보인다.
"독자들이 그러더라. 엄마가 너무 착하다고(웃음). 허용이라기보다는... 나도 그렇고, 우리 엄마도 그런 아이들 모습도 예쁘다고 봐줬다. 어릴 적 팥죽 먹을 때도 나는 새알을 안 먹고 밥상에 뱉어냈는데, 그게 보기 싫게 쌓여도 엄마가 다음부터 밥 안 준다는 소리를 안 했다. 그 옛날 시골은 지금보다 더 가난하던 시절이었지만, 엄마는 혼내지 않았다. 엄마는 나에게 안전망 같은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