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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책임을 물을 수 없었던 학살 사건'들'
2025-06-25 18:27:59
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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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다낭시 하미마을에서 온 응우옌티탄(아래 탄)은 서울고등법원 법정에 섰다. 탄은 지난 6월 18일 처음으로 한국 법원에서 베트남전쟁시기 한국군으로부터 입은 피해를 학살생존자로서 이야기했다. 자신의 대리인단과 자신을 응원해 온 시민들과 함께 법정에 들어 선 탄은 서울고등법원 제11-1행정부 판사들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어떤 국가가 군대를 다른 나라에 파병해서 전쟁범죄를 저지르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미마을 학살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해서 한국 정부가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변호사들과 미리 상의해서 준비한 것이 아니라, 탄이 평소 생각해 왔던 내용들이다. 변호사들은 법정에 들어가기 전에 탄에게 요청했다.

"미리 법원에 제출한 발언 내용을 그대로 읽지 마세요. 판사의 마음을 움직여 주세요. 판사도 사람입니다. 판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생생하게 이야기 해주세요."

탄은 자신의 변호사들의 요청이 무색해질 정도로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접 겪은 끔찍한 비극과 고통을 60년 가까이 삭이는 동안 고민은 우물처럼 깊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탄이 자신의 고민 속에서 길어 올린 말들은 우물물처럼 시원하게 느껴졌다.

"전쟁은 끝난 지 오래지만, 제 아픔은 아물지 않았습니다"

탄은 하미마을 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중 한 명이다. 하미마을 학살은 1968년 2월 24일 아침 해병 제2여단 청룡부대 군인들이 마을로 들어와 주민들을 몇 군데로 모아 놓고 151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살해된 대부분은 어린아이와 여성들이었다.

아직도 기억에 선명히 새겨진 그날. 탄의 집으로 들이닥친 한국군에 의해 마당 방공호에 숨어 있던 어머니와 남동생, 숙모와 두 명의 사촌동생이 살해되었다. 탄 자신은 귀, 엉덩이와 허벅지에 부상을 입었다.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전쟁고아가 된 탄은 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팔고 식모살이를 하며 살았다. 탄은 재판부를 바라보며 힘겹게 살아야만 했던 '학살 이후의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전쟁이 끝난 지 오래되었지만, 제가 안고 있는 아픔은 여전히 아물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학살을 겪은 후부터 너무 어려운, 그리고 너무 잔혹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학살에서 저는 어머니를 비롯해 가족 다섯 명을 잃었습니다. 학살로 생긴 트라우마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쟁과 학살 때문에 저는 그 이후에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했고, 너무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통역으로 탄의 말을 전하던 응우엔 응옥투엔(한국 이름 시내)은 이 대목에서 울음을 삼키고 숨을 가다듬어야 했다. 탄과 통역자가 어느 순간 함께 울먹이기도 했고, 숙연해진 법정에서도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변호사석에 앉아있던 필자는 탄의 심정을 온전히 전달받기 위해 눈을 감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열 번 이상 들은 내용이지만, 법정에서 다시 들으니 감개무량했고 변호사들의 마음 역시 함께 떨렸다. 재판부에도 탄의 마음과 함께 하는 자들의 떨림이 전달되기를 바랐다.

지금까지 탄은 한국 정부에 베트남전쟁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로 입은 고통을 인정하고 책임을 져야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해왔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은 안타깝게도 매번 실패를 마주해야 했다. 탄은 2019년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생존자 102명과 함께 문재인 정부에 학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서를 제출했지만, 거절당했다. 국방부는 탄의 청원에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내왔다.

"국방부에서 보유하고 있는 한국군 전투사료 등에서는 주월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관련 내용이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확인되지 않는다'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상 '학살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의도가 담긴 거절이었다.

다시 문을 두드린 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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