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봄날의 행복을 만끽하던 한 가족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충남 당진시 합덕에 있는 A씨의 친정집(연립주택)이 큰 화재로 집이 전소됐다는 전화였다. 오래된 김치냉장고 폭발로 인한 화재였다.
이 일로 독립유공자 박창옥 선생의 외손자인 A씨 아버지 원종성 씨(86)와 그의 가족은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잃고 말았다. 박창옥(1890-1939) 선생은 1919년 4월 4일 당시 서산군 정미면 천의 장날을 기해 열린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보안법위반)로 체포돼 태(笞) 90도의 형을 받고 풀려났다. 정부는 199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천만다행으로 인명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이웃집까지 피해를 입어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화재의 원인이 된 제품의 제조사는 법정관리 상태여서 어떤 보상도 받을 수 없었다.
A씨는 부모의 노후 자금과 자식들의 도움을 십시일반 모아 이웃집의 피해 복구부터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정작 삶의 터전을 잃은 여든 중반의 원 씨 부부는 타 지역으로 임시 거처를 옮겨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특히 오랜 시간 청각을 잃은 원 씨와 지난 1년 사이 시력까지 나빠져 시각장애를 얻게 된 아내 박미자 씨는 서로를 의지하며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그러면서도 '죽기 전에 고향으로 돌아가긴 글렀구나"라며 고향과 이웃에 대한 그리움마저 잿더미에 묻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