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정 신임 서울동부지방검찰청장이 4일 취임사에서 검찰의 지난 과오를 반성하며 "우리는 주권자 국민에게 변명할 것이 아니라 변화를 보여야 한다. 늦었지만, 그럼에도 지금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빠른 적기"라고 강조했다.
임 검사장은 이날 오전 청사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2018년 2월 검찰내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조사단의 조사를 받으러 처음 서울동부지검으로 출석하며 늦겨울 한기에 마음이 시리고 발걸음이 무거웠다. 수사구조 개혁이 이뤄질 때, 더욱 시리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왔다"는 말로 입을 뗐다. 이어 "검찰은 정의와 죄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라며 "언제나 틀리는 저울도 쓸모 없지만, 더러 맞고 더러 틀리는 저울 역시 믿을 수 없기에 쓸모가 없다"고 말했다.
임 검사장이 말하는 '더러 맞고, 더러 틀리는 저울'의 면모는 서울동부지검의 역사와도 연결된다. 서울동부지검은 2019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재수사를 주도했던 곳이다. 이 과정에서 김 전 차관 출국금지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규원 당시 검사,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이성윤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이 재판에 넘겨졌고, 최근 전부 무죄판결이 확정됐다.
임 검사장은 취임식을 앞두고 "역대 서울동부지검 검사장들의 취임사와 최근 심우정 검찰총장의 퇴임사도 구해 읽어보았다"라며 "서글펐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 말들이 사실이었다면, 검찰이 지금과 같은 위기를 맞았겠는가"라며 검찰이 권한을 남용했던 역사를 되짚었다.
대개의 검찰 구성원들이 감당하기 버거운 업무를 감당하기 위해 헌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특정인과 특정집단에 대한 표적수사가 원칙없이 자행되었고, 특정인과 특정집단에 대한 봐주기가 노골적으로 자행된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법과 원칙을 내세우고 정의와 공정을 외쳤다. 김학의 전 차관의 긴급출국금지 사건 등 표적수사를 사과하지도 않았다. 사법피해자들 앞에 우리가 정의를 말할 자격이 있나.
임 검사장은 "사실을 직시해야 진단을 제대로 할 수 있고, 진단이 제대로 되어야 적절한 처방을 할 수 있다"며 "국민들이 수년간 지켜보았던 표적수사와 선택적 수사, 제 식구 감싸기와 봐주기 수사를 이제 인정하자. 우리 모두 잘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주권자 국민에게 변명할 것이 아니라 변화를 보여야 한다"며 "늦었지만, 그럼에도 지금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빠른 적기다. 해야하므로 할 수 있고, 결국 해낼 것"이라고 했다.
"검찰, 바뀌지 않으면 해체 가까운 개혁 당할 것"
임 검사장은 첫 출근길에 취재진을 만나서도 검찰개혁에 관한 내부 반발을 두고 "수십년 동안 계속 있었던 일"이라며 "윤석열 정부는 검찰독재정권이라는 평가도 있지 않나. 그때보다는 지금 목소리가 한풀 꺾인 것 같다"고 얘기했다. 또 "한때 우리가 존경했던 검찰 선배가 내란수괴로 조사받고 있는 모습에 참담해할 후배들이 한두 명 아닌 것 같다. 그때 우리 검찰이 잘못 평가한 게 아닌가란 것을 반성하고 있다고 저는 느낀다"며 변화의 가능성을 말했다.
임 검사장은 2012년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상부 지시를 어겨가며 무죄구형하고, 검찰 내부를 고발하느라 사실상 인사불이익을 받아오다가 새 정부에서 전격 승진했다. 이를 두고 '정치적 인사'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임 검사장은 "저를 바라보는 분들이 서있는 곳에 따라서 제 바탕색이 달라보이는 것은 십몇년 내부고발자 생활을 하면서 익숙했던 일이라 감수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제 진심은 제가 앞으로 하는 행동으로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임 검사장은 오랜 검찰개혁론자로, 인사 전까지 국정기획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앞으로도 자문위원으로서 계속 제 목소리와 고민을 담아내려고 한다"며 검찰을 향한 비판, 개혁 요구 등은 "검찰이 감수해야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검찰이) 수술대 위에 놓인 상황"이라며 "바뀐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검찰은 정말 해체에 가까운 개혁을 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또 "실천으로 보여드리고자 한다"며 "열심히 하겠다"고 인사했다.
다음은 임은정 검사장의 취임사 전문이다.
사랑하는 서울동부지검 동료 여러분, 2018년 2월, 「검찰 내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조사단」에 조사를 받으러 처음 서울동부지검에 출석하며 늦겨울 한기에 마음이 시리고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수사구조 개혁의 해일이 밀려드는 이때, 더욱 시리고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