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사회'의 기치를 내건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줄곧 주창해 왔던 '기본사회'는 장기적 비전이나 정책 실험의 대상을 넘어 이제 대한민국의 국정 방향이 되었다. 기본사회 실현을 위한 국가 전담기구로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공약도 내놓았으니, "국가가 국민의 미래를 책임지고, 희망과 혁신의 꽃을 피워내는 기본사회를 열겠다"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포부는 곧 국정과제로 정식화 할 전망이다.
그러나, 기본사회로 가자는 새 정부의 비전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시각도 만만치 않다. 헌법 제10조에 국민의 행복추구권 및 기본권 보장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 모두의 인간다운 삶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기본사회의 핵심 가치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이념적 공세를 받고 있다. 또한, 천문학적인 재정이 소요될 것이기에 실현 불가능하다는 논리도 널리 퍼져있다. 복지 확대를 주장할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는 노동 의욕 상실, 도덕적 해이와 같은 목소리가 빠지지 않는다. 대선 과정에서는 유권자들의 표를 얻으려는 대표적인 선심성 공약으로 꼽히기도 했다. 기본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에 공감하는 경우라도 기본사회로의 구체적인 이행 전략과 경로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거나, 기본사회에 반발하거나 저항하는 세력이 많아 혹시 좌초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국민도 많다. 전문가들도 기본사회 구상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재원 규모를 산정하고, 마련하는 데에 많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현장성과 연대, 혁신으로 위기를 메워온 시민사회
이런 상황에서 '기본사회'의 실현을 앞당길 가장 안전한 길이자, 지름길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은 '기본사회' 실현의 관건이 재원조달 전략이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시민사회의 참여와 역할 활성화, 사회적 연대 강화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시민사회의 참여가 미진하고, 역할이 제한적이라면 '기본사회'는 그저 국가가 주도하는 복지 서비스의 확대에 불과할 것이다. '기본사회'가 헌법의 시민적 권리에 기반을 두고, 국민이 최소한의 삶의 기반을 가질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라고 할 때, '기본사회'로 향하는 전략과 경로에서 시민사회가 빠진다면, 가까스로 쌓아 온 '복지는 시혜가 아니고 권리'라는 담론도 무너지게 되고, 시민은 한낱 복지 행정 서비스의 수혜자로 전락하게 될 수 있다.
그동안 시민사회는 정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역할과 함께 정부와의 거버넌스를 통해 정책의 공동생산자, 공공서비스의 공급 및 전달자 역할을 해왔다. 이재명 정부가 정확히 짚고 있듯,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복합적 위기는 단편적 접근으로 해결 불가능하며, 정부가 혼자 나서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시민사회의 역할은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시민사회는 참여와 연대의 가치와 현장에서 문제를 발굴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전문성, 참신한 발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혁신을 통해 넘어진 시민을 일으켜 세우며, 흩어진 개인을 공동체로 연결하고, 구멍 난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하게 메워왔다. 그렇기에 시민사회의 주요 역사는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지키고,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아직 '기본사회'를 둘러싼 논의가 활성화되지 않은 탓이기도 하지만, 현재 '기본사회'는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어 국민에게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확대하는 정책 정도로 인식되면서 재정전략만 강조되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기본사회' 실현에 필요한 건 과연 '돈'만일까? 적극적인 재정확대 정책을 취하더라도, 점점 증대하는 복지 요구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다. 당장 내년에 요구되는 예산 소요도 충족하기 어렵다는 게 현실적인 진단이다. 새 정부는 시민사회가 빠진 '기본사회'를 검토하고, 재정전략을 넘어 시민사회의 참여와 역할 활성화, 사회적 연대를 강화할 방안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기본사회로 가는 길, 숙의와 공론의 시민사회
'기본사회'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시민사회의 또 다른 역할은 숙의와 공론이다. '기본사회'가 현재 대한민국이 당면한 위기를 해소하고,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종합적인 구상인 만큼, 정책 비전에서부터 목표와 전략, 이행과제와 정책 프로그램 등 모든 영역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이나 정략적 대립도 당연해 보인다. 기본사회가 대통령 한 사람의 정치적 구상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거대한 전환을 가져올 도전이라면, 기본사회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져 정책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가 넓어져야 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중요한 정치적 현안일수록, 갈등의 세기가 강한 의제일수록 신속한 해법보다는 숙의와 공론의 시간, 그리고 공간이 필요하다. 숙의와 공론은 정책의 정당성 확보는 물론 정책에 대한 수용성도 높일 수 있으며, 사회적 포용성과 통합성을 높이는 데도 기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