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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탄광 유해 발굴은 한일 협력의 단초"
2025-06-25 00:17:48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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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도 수몰 희생자들의 유해는 바닷속에 방치된 채 일본 정부는 진상규명과 유해 발굴에 아무런 책임도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참혹한 역사를 기억하며 침묵 위에 쌓인 억울함을 바로잡기 위해 이곳 부산항에서 다시 출발합니다. 부산항은 조선의 젊은이들이 '징용'이라는 이름으로 강제로 끌려갔던 눈물의 항구입니다."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된 조선인 노동자 136명을 포함해 183명의 노동자들이 83년째 잠들어 있는 일본 우베시에 있는 장생탄광(長生炭鑛·조세이탄광). 조선인 노동자들이 많아 '조선광산'이라고도 불렸던 장생탄광에 70여 명의 시민들이 지난 18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장생탄광희생자귀향추진단'이 주최해 이루어진 탐방은 일제시대 젊은이들이 끌려갔던 길인 부산~시모노세키 항로를 따랐다. 18일 오후 부산항에서 배를 탄 후 다음날 오전 시모노세키항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약 1시간 30분가량 달려 장생탄광이 있는 우베시 도코나미 앞바다에 닿았다.

귀향추진단은 바다위에 우뚝 서 있는 피아(배수구) 2개를 바라보며 "이곳이 83년 전 희생된 이들의 유해가 그대로 묻혀 있는 곳"이라는 설명을 들은 뒤 약 300m 떨어진 추모비 앞으로 가 추모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간 조화를 들고 추모비를 한 바퀴 돈 후 꽃을 내려놓고 절을 올렸다. 동요가수 이종일씨가 자신이 만든 곡 <장생바다의 눈물>을 부르고 이해서씨는 추모시를 낭독했다. 이어 탄광 입구로 이동해 지난해 발견된 갱구(갱도 입구)에서 춤꾼 박정희씨가 해원무를 추는 모습을 지켜봤다.

장생탄광을 방문한 시민들은 현장을 지켜본 후 한일관계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한국 정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윤석열 정부가 하지 못한 일을 국민들이 불꽃혁명으로 만들어낸 이재명 정부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신 발굴은 국경을 너머 인도적인 문제"


도휘 스님(73)은 "어머니가 해방되기 전 결혼해 우베시에서 살다가 누나를 낳고 해방된 후 귀국선을 타고 한국에 돌아왔다"며 "장생탄광을 보면서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고 말했다.

도휘 스님은 "강제로 끌려온 분들의 넋을 달래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기 위해 이곳에 오게 됐다"면서 "한일 양국 정부가 함께 나서면 얼마나 좋겠나. 장생탄광 유해 발굴을 통해 한국과 일본이 서로 적대시하지 말고 상생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경북 군위에서 막걸리를 만들고 있는 이화선 나린증류소 대표(우리술문화원 원장)는 어릴 적 외할아버지가 바다에서 돌아가신 기억을 갖고 있다. 이 대표는 "외할아버지가 전북 부안에서 조기잡이를 하다가 배에서 돌아가셨다"면서 "당시 외할아버지 시신은 찾았는데 함께 돌아가신 분들의 시신 일부는 찾지 못해 장사를 지내지 못하는 모습이 기억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시신이 없으면 장례도 못 지내는데 이곳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유족들 마음은 어떨까"라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이렇게 번듯한데 왜 일본에 말 한마디 못하나. 시신 발굴은 국경을 넘어 인도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경북 상주에서 농사를 지으며 우리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는 오덕훈 피스빌리지네트워크 이사장은 "일제강점기 시기에 일어난 일이지만 해방 80년이 되도록 이런 문제에 대해 국가가 나서지 않는 것은 분개할 일"이라고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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