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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하면 떠오르는 것, 이제 성심당은 아닙니다
2025-07-03 13:54:04
전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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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대전' 하면 가장 먼저 '성심당'이 떠올랐다. 막내가 그곳을 방문하기 위해 대전을 연거푸 두 번이나 다녀왔고, 아들도 여자친구와 그곳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대전' 하면 이응노미술관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지난달 22일,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대전을 찾았다가 이응노미술관을 방문하고는 소나무와 대나무, 그리고 '군상'에 반했기 때문이다.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은 이응노미술관


이응노 화백(1904-1989)은 내게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은 예술인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동백림 사건은 1967년에 일어난 대규모 공안사건으로,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대표적인 간첩단 사건이다.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피해자가 윤이상 작곡가와 이응노 화백이다).

'간첩'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써 고초를 겪은 예술가로 알고 있을 뿐 그의 그림 세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였다. 예식장 가까이에 이응노미술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향한 것은.

이응노미술관은 진입구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루버 지붕에 내린 햇살과 그로 인해 생겨난 그늘. 그 속에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마치 관람객에게 인사를 건네는 듯 몸체를 살짝 기울이고서. 설계자가 누구인지 궁금해 자료를 뒤졌다. 미술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이응노미술관은 2007년 5월에 개관했다. 건립은 대전광역시와 이응노 화백의 아내 박인경 여사가 2004년 뜻을 모으면서 이루어졌다. 건물을 설계한 이는 프랑스 건축가 로랑 보두엥(Laurent Beaudouin, 1955 ~ ).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브장송 대학 도서관과 낭시 미술관을 건축한 이로, 절제된 건축 어휘로 많은 찬사를 받고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는 이응노 화백의 작품 <수(壽)>에서 영감을 받아 미술관을 설계했다. 지을 당시 그는 다음과 같은 건축 철학을 밝혔다.

"미술관은 전시 작품이 가장 돋보일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한 예술작품이어야 합니다. 이응노 선생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반영하는 미술관이 될 것을 확신합니다."

루버 지붕과 소나무에서 그런 철학이 엿보였다. 이응노미술관은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그림은 물론이고 창으로 보이는 풍경조차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전시 작품뿐만 아니라 창에도 저절로 카메라를 들이대게 만들었다.

전통 사군자 작가로 미술에 입문한 이응노


그림 중에서는 대나무가 단연 돋보였다. 고고한 자태와 용틀임을 내보이는 대나무에서는 기존에 보던 문인화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독창성이 엿보였다. 이러한 독창성은 그가 사군자로 탄탄한 기반을 다진 후 동양화와 서양화를 두루 섭렵한 작가라는 사실에서 그 연원을 파악할 수 있었다.

1904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난 이응노 화백은 전통 사군자 작가로 미술에 입문하였다고 한다. 수묵화와 사군자의 기초를 닦아준 이는 충남 당진의 염재 송태회. 그림 그리는 것을 반대하던 아버지가 화가로서의 길을 허락하며 소개해준 이다.

21살이 되던 해 제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청죽(晴竹)>으로 입선하며 작가로서 데뷔한 이응노 화백은 이후 스승 김규진을 만나 '죽사(竹史)'라는 호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사군자를 배웠다. 그러다 28세가 되던 어느 봄날, 몰아치는 비바람에 술렁거리며 이리저리 쓰러지는 대밭의 모습을 보고 강한 충격을 받아 자신만의 화풍을 찾기에 이른다. 이후 33세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동양화와 서양화를 두루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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