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크
오마이뉴스
쌍둥이 남매가 엄마 죽음 후 마주한 진실, 이들이 남긴 질문
2025-06-25 17:23:29
김상목
  •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 카카오톡으로 공유하기
  • 트위터로 공유하기
  • url 보내기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왈 마르완'(1949 ~ 2009)이 세상을 떠났다. 남은 가족은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이다. 둘은 어머니의 오랜 직장 동료이자 그들 가족과 허물없이 지내온 '르벨'에게 고인의 유언을 전해 듣는다. 공교롭게도 르벨의 직업은 '공증인'이었으니 안성맞춤인 셈이다.

하지만 공증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남매를 충격에 빠트리기 충분했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어떤 내용을 이행하기를 요청하고, 그 요구가 이행되기 전에는 정식 장례를 치를 수 없다고 남겼다. 대체 무슨 내용인지 궁금한 그들에게 밝혀진 당부는 더 황망한 내용이다. 존재도 몰랐던 그들의 생부, 그리고 형이자 오빠를 찾아 자신이 죽기 전 작성한 편지를 각각 전하라는 게 편지에 적힌 내용이다. 그걸 완수하면 비로소 남매에게 편지를 전해주라 했다는 전언이다.

남매의 입장은 상반된다. 시몽은 석연찮은 내용이라 여겨 유언을 무시하려 하지만, 잔느는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이행하려 한다. 캐나다에서 어머니의 고향인 중동 어딘가로 긴 여행을 떠나 모친의 과거를 더듬기 시작한다. 조금씩 퍼즐 맞추듯 밝혀지는 숨은 진실. 하지만 그 내용은 자식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반갑지 않았던 영화와의 첫 만남, 그런데...


<그을린 사랑>이 재개봉했다. <듄> 연작으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블록버스터 명장이 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이름을 전 세계에 각인한 출세작인 동시에 수많은 관객을 충격에 빠지게 만든 문제작의 복귀다. 잔혹한 전쟁의 후유증을 소재로 삼은 내용 때문인지 국내 재개봉일은 하필 호국보훈의 달을 겨냥했다. 의도가 쉽게 읽히는 대목이다.

과거 개봉 당시에도 화제가 된 영화였기에, 2011년 여름 국내 개봉 당시에 극장을 찾아 확인했던 기억이다. 그런데 사실 썩 개운치 않은 만남이긴 했다. 주변의 호평과 격찬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폭력의 악순환에 관한 강력한 경고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 쳐도, 극단적인 설정과 과도한 상징화로 인한 일종의 '불행 전시'가 과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다시 또 보라면 절대로 응하고 싶지 않은 그런 작품. 사람들이 <그을린 사랑>에 관해 물으면 손사래를 치며 '그 영화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던 경험이 적지 않다.

공교롭게도 <그을린 사랑>을 접한 이후로 유독 비슷한 내용과 질감의 영화를 끊이지 않고 만나게 되었다. 혹시나 또 닮은꼴 영화면 어떡하나 염려하면서도 기이하게 자석에 끌리듯 해당 작품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역시나 뒷맛 불편한 기억을 층층이 쌓아 나갔다.

신기한 건 그 영화들의 배경과 상황이 다 달랐다는 점이다. 전혀 다른 시기, 멀찍이 떨어진 공간을 무대로 하는데 줄거리가 똑같진 않지만, 비슷한 맥락과 사연을 담은 극한의 비극으로 점철된 것들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영화와 영화가 머릿속에서 혼합되며 마치 큰 덩어리 같은 이미지로 겹치기 시작했다. 마치 어릴 적 악몽이 막연하고 희미하게나마 오래도록 질기게 남는 것처럼 말이다.

<그을린 사랑>은 구체적으로 국가와 지역을 명시하진 않지만, 중동 현대사에 상식을 가진 이라면 어렵지 않게 레바논 내전 상황을 배경으로 삼은 걸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유고슬라비아 내전과 보스니아 및 코소보에서의 인종 청소, 이라크의 쿠르드족 탄압,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 아프리카 각국 내전 속 소년병과 학살 사례들은 판박이처럼 닮은 모양새였다. 어떤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더라도 비현실적이라 욕먹을 내용이 실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영화는 열심히 그런 기막힌 사실을 형상화하는 데 불과했던 것이다. 전율이 일고 소름이 돋았다.

영화가 끈질기게 하는 질문


<그을린 사랑>에는 원작이 존재했다. 영화 개봉 당시에는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작품이 반향을 얻은 영향 덕분인지 뒤늦게 국내에 정식으로 출판된다. 영화가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고, 이듬해 극장 개봉을 맞이한 후, 같은 원작에 기반한 연극이 2012년 국내 초연되고, 모든 것의 출발이라 할 희곡 대본집이 2019년에 소개되었으니 기원을 거슬러 오르게 된 셈이다. 마치 영화 속 쌍둥이 남매가 어머니의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 것처럼.

전체 내용보기
주요뉴스
0포인트가 적립되었습니다.
로그인하시면
뉴스조회시 포인트를 얻을수 있습니다.
로그인하시겠습니까?
로그인하기 그냥볼래요
맨 위로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