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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후반을 풍미한 세계적 쿠데타 유행
2025-06-24 13:31:05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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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대통령에 한해 연임 제한을 철폐하는 1954년 개헌을 디딤돌로 이승만은 사실상의 종신군주가 됐다. 그러자 야권은 1955년에 민주당이라는 거대 야당을 형성해 반이승만 전선을 강화했다. 그런데 이승만에 대한 도전의 진원지는 민주당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외부에서도 왔다. 아프리카·아시아·중남미 등에서 전개된 1950년대 후반의 정치적 격동도 그의 권력에 영향을 끼쳤다.

20세기 전반기 세계질서의 구도 중 하나는 '식민지 대 제국주의'였다. 1939년에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은 이 문제를 제대로 그리고 올바로 해결하지 못했다. 한국과 중국도 부분적으로 참여하기는 했지만, 이 대전은 기본적으로 '제국주의 대 제국주의'의 대결이었다. 식민지배문제의 해결이 이 대전의 일차적 과제가 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1950년대 중반 이후에 두드러진 것이 미국과 소련 어느 쪽과도 동맹하지 않는 제3세계 비동맹진영이다. 이는 제2차 대전이 해결할 수 없었던 과제들을 식민지배 피해자의 관점에서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이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1950년대의 역사적 의의에 관한 기고문을 1960년 1월 초의 영국 <옵저버>에 실었다. 이 기고문에서 그가 강조한 것 중 하나는 아시아·아프리카의 블럭화다. 이 글을 번역한 그달 8일 자 <조선일보> 기사 '50년대의 역사적 의의 3'에 이런 대목이 있다.

"로시아가 미국보다 뒤떨어졌던 거리를 단축한 것이 지난 10년 동안에 일어난 유일한 변화가 아니었다. 정치적인 힘의 관계를 논한다면, 서방측이 아닌 인류의 대다수가 신흥세력으로써 서방 소수파와 동등한 정치력을 발휘하는 단계에 접근하게 되었거니와, 아·아 뿔럭 내에 있어서는 중공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인도·인도네시아 등과 예리한 대립을 일으키고 있다. 50년대라고 해도 무방하겠지만, 정확히는 1947년 이래 12년 동안이라고 해야 할 지난한 시대에서 가장 뛰어난 정치적 변화는 서방 식민정치하에 있던 비서방제국민이 점차적으로 정치적 자유를 획득하였다는 사실일 것이다."

토인비는 인류 대부분이 제3세계로 묶이고 있으며 서방세계와 동등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가 그렇게 평가한 제3세계는 이승만이 종신군주의 길을 걷던 1950년대 후반에 정치적 역동성을 분출했다. 쿠데타나 정변의 빈발이 그런 양상의 일환들이다.

미국이 한일수교 및 한미일동맹을 재촉하게 된 핵심 배경

'쿠데타의 시대'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이 시기에는 군인들의 집권이 비일비재했다. 일례로, 1958년에는 수단·이라크·파키스탄·미얀마·태국에서 군인들이 정권을 잡았다. 한국 4월혁명이 있었던 1960년에는 콩고·에티오피아·튀르키예(터키)·라오스·엘살바도르의 군인들이 정부를 장악했다.

꼭 쿠데타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 시기에는 세계 정세가 극히 불안정했다. 1959년 1월 17일 자 <경향신문> '59년의 세계 10대 문제 (3)'은 "작년 1년 중동의 움직임은 눈이 돌 지경"이라고 표현했다. 이 기사는 "통일아랍공화국·아랍연방의 결성, 레바논 내분, 이락 혁명, 아랍연방 붕괴, 미·영 출병 등 여러 가지 세력이 헝클어져 중동의 세력분포는 서서히 바꾸어져가고 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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