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일보/박세준 기자)더불어민주당이 사법행정 전반을 재편하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사법불신 극복·사법행정 정상화 TF(태스크포스)’를 출범시켰다. 최근 대법원과 법원의 조직·운영 구조를 겨냥한 개혁안을 잇따라 꺼내들면서, ‘이재명 사법리스크’가 당 운영의 발목을 잡는 상황을 제도적으로 차단하려는 전략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은 3일 오전 국회에서 정청래 대표와 전현희 단장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TF 출범식을 열고 사법개혁의 본격화를 선언했다. TF는 법원행정처 폐지, 대법원장 권한 분산, 사법행정위원회 신설 등을 핵심 의제로 논의할 예정이다. 이른바 ‘양승태 사법농단’ 이후 이어져 온 법원 내 권한 집중 문제를 재점검하겠다는 명분이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앞서 의원총회에서 “법원이 너무 폐쇄적이고, 인사·행정이 수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사법행정의 민주화를 논의할 시점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당은 TF를 통해 구체적인 법안 설계에 착수하고, 연내 발의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TF 출범은 단순한 조직 개편을 넘어선 ‘정치적 의미’도 크다. 최근 대장동, 백현동, 법인카드 등 이재명 대통령을 둘러싼 재판이 본격화되면서, 사법 리스크가 당의 핵심 부담으로 재부상했다. 민주당이 추진 중인 ‘재판중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은 현직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된 재판을 받는 경우, 공익적 판단에 따라 재판 진행을 일정 기간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사위를 통과해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는 이 법안은 ‘이 대표 구명용’이라는 야권의 비판 속에서도 민주당 내에서는 ‘사법 공정성 회복’이라는 이름으로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아울러 민주당은 ▲대법관 증원 ▲대법관 추천위원회 구성의 다양화 ▲하급심 판결문 공개 확대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법 왜곡죄 신설 ▲재판소원제 도입 등 전방위적인 사법개혁 입법 과제를 병행하고 있다. 박수현 당 수석대변인은 “이제는 사법개혁 공론화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라며 “국회 공청회와 당내 토론을 통해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개혁 드라이브’는 민주당이 사법 리스크를 ‘제도 논의’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법원행정처 폐지 논의나 대법원장 권한 분산과 같은 구조개혁이 단기간에 실현되긴 어려우나,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선점함으로써 향후 정치적 공세에 대한 방어막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야권 관계자는 <서울일보>에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 일정이 내년 총선 국면과 맞물릴 경우, 사법개혁 의제를 전면에 내세워 정쟁을 구조화하려는 포석”이라고 진단했다. ‘사법 불신 극복’을 내세운 개혁이 결국 이 대표를 향한 사법 리스크를 정치적 쟁점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전현희 민주당 최고위원 등에 따르면 연내 관련 입법을 목표로 TF가 구체적 방안을 마련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법원행정처의 폐지 또는 기능 분산 등의 가능성도 거론된다.
민주당의 이같은 행보는 단기적으로는 사법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움과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이 대통령 재판이 당의 정치 일정에 미치는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이중 전략’으로 해석된다. 결국 이로써 사법개혁을 둘러싼 여야 공방이 재점화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정기국회 후반전의 핵심 쟁점은 ‘법원행정처 개편’과 ‘재판중지법’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