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며, 상해를 입힌 자는 곡물로써 배상하게 하고,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노비로 삼는다." 4358년 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의 법률 중 남아서 전해지는 내용이다. 물건을 훔친 자를 노비로 삼았다는 것을 보면, 권력을 훔치려다 잡힌 자는 '노비로 삼는 것'보다 더 심한 벌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내란죄는 우리나라 형법에서 규정한 범죄 중에서 첫 번째로 등장하는 범죄다. 그런데 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벌 중에 '사형'이나 '징역형'은 누구나 쉽게 그 의미를 알지만 '금고'라는 형이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못하게 할' 금(禁)에 '막을' 고(錮)로 이루어진 형벌이다. 가두어 놓아서 그야말로 아무것도 못 하게 하는 형벌이다. 반면 징역은 '징계할' 징(懲)에 '부릴' 역(役)을 합해서 만든 형벌이다. 그러니까 가두어 놓는 것은 같지만 노역을 강제로 시키느냐 마느냐에 따라 징역이나 금고냐가 갈린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의 수고로움을 모르고 살아온 범죄자에게는 당연히 금고가 아니라 징역형이 어울린다.
파면 당한 전직 대통령과 그 추종자들이 저지른 내란죄를 묻는 재판에 전 국민의 관심이 크다. 뉴스 첫 줄이 피의자 소환, 참고인 소환, 출국금지, 체포영장 청구, 구속영장 청구, 영장 실질심사, 구속기간 연장, 재구속, 항소 포기 등의 재판 관련 용어로 가득하다 보니, 뉴스를 이해하고 주변으로부터 무식하단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이런 용어가 무엇인지를 가끔 찾아봐야 하는 희한한 세상이 되었다. 법 없이 살기도 어렵지만 법 모르고 살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사람의 생명이나 인권을 너무나도 가볍게 여기거나, 다수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중죄를 범하여 법 앞에 선 피고인들이 뉘우치기는커녕 파렴치한 태도를 드러내는 장면을 보면 우리가 동물만도 못한 인간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란 재판이 조속히 끝나고 일상이 회복되기를 모두가 기대하고 있다.
사람이 피고가 아닌 재판들
재판에서 피고는 죄를 지었다고 의심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사람 이외의 피조물이 재판의 피고가 된 적이 있을까? 매우 이례적이지만 실제로 그런 재판이 존재했다. 주로 중세나 근대 초기까지 그런 사례들이 적지 않게 알려져 있다. 동물, 식물, 사물, 심지어는 자연현상이 피고가 되었던 경우도 있었다.
에드워드 에번스(Edward P. Evans, 1831-1917)라는 미국 출신 인문학자가 1906년에 발표한 <동물의 재판과 형벌>이란 책에는 동물, 벌레, 심지어는 무생물에게 법적 책임을 물었던 많은 재판 사례들이 소개된다. 죄목도 살인, 농작물 파괴, 성범죄 협조 등 다양하고, 형벌 또한 교수형, 화형, 몰수, 교회 금서 지정, 추방 등 다양하다. 특히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거나 사람을 다치게 한 돼지를 재판하여 사형에 처한 사례가 많이 나온다.
1386년 프랑스에서는 어린아이를 물어 죽인 돼지가 체포되어 정식 재판 후 교수형에 처해진 적이 있고, 1545년에도 프랑스에서 포도밭을 해친 벌레를 상대로 교회가 재판을 통해 추방 명령을 내렸다. 재판을 통해 사람들에게 경계심을 갖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살인에 사용된 칼이나 무기가 재판을 받고 몰수되거나 폐기 처분된 사례도 존재한다.
중세 사회에서는 재판을 통한 형벌이 단순한 응징이 아니라 도덕적 혹은 종교적 정화의식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의 뜻을 인간 사회에 전달하기 위해 재판이 활용된 것이다. 이런 흥미로운 사례들로 가득한 에번스의 책은 초판 발행 이후에도 최근까지 여러 차례 발행을 거듭할 정도로 인기 있는 스테디셀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