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랑구 중화동, 경의중앙역 인근에 작은 독립서점 하나가 있다. '코프키노(Kopfkino)', 독일어로 머릿속에 영화처럼 펼쳐지는 상상이며 공상 쯤을 뜻한다는 이름이 나붙었다. 6월의 날 좋은 어느날, 책과 영화를 애정하는 나는 이곳에 잠깐 있을 생각으로 찾아갔다가, 결국 책 한 권을 전부 읽고난 뒤에야 자리를 떴다(사인이 적힌 책이라 별도로 파는 책은 아니었다).
이곳이 아니라면 만날 수 없었을 책, 출판사 역할도 겸한다는 코프키노가 올해 출간한 <마티아스 피녜이로: 방랑하는 영화, 모험하는 영화>(2025년 2월 출간)가 바로 그것이다.
마티아스 피녜이로는 아르헨티나의 중견 영화감독이다. 올해로 43살인 그는 문학적 원천을 이제껏 활용되지 않은 방식으로 다루는 데 정평이 난 감독으로, 전주국제영화제가 그 데뷔작부터 발굴해 알리며 한국과 특별한 연을 맺기도 했다. 2008년 제9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도둑맞은 남자>가 대상인 우석상을 받았고, 지난해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때는 심사위원으로 위촉돼 활약하기도 했다.
지역에서 친구들과 함께 작은 규모의 영화를 독창적으로 만들어내는 피녜이로의 제작방식은 필연적으로 그가 대중 가운데 널리 알려지지 못한 한계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래서 대중이 그를 몰라야 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바로 그것이 영화제의 기능이며, 영화를 소화하고 향유하는 문화적 체계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행히도 한국은 그를 충실히 해내고 있다 말하기 민망하다.
영화와 관객 사이를 메우는 시네필의 책
흥미로운 건 출판사이자 독립서점 코프키노가 그 역할을 얼마쯤 지탱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초판 1쇄를 거의 판매하고 올해 중 예정돼 있다는 피녜이로 최근작 <너는 나를 불태워> 정식 개봉에 맞춰 2판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는 <마티아스 피녜이로: 방랑하는 영화, 모험하는 영화>가 그 징표다. 나는 이 책이 꽤나 흥미로웠던 나머지, 앉은 자리에서 그를 끝까지 읽어내기로 결심했다. 코프키노의 대표인 강탄우 혼자 출판부터 서점 운영까지를 모두 책임지는 흔적이 역력하여, 2판의 교정이라도 봐주어야겠다는 생각도 이유가 됐다.
책은 코프키노의 첫 출간작으로, 마티아스 피녜이로의 영화세계에 대한 충실한 입문서다. 책을 기획한 강탄우가 말하기를 "이 감독의 특징은 셰익스피어 희극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각색한다는 것, 그리고 실제 친구며 지인들과 모여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라며 "올해 2월 인스타그램 매거진 '시네마토그래프'를 통해 그의 전 작품을 상영할 때 내한해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벤트를 앞두고 이 감독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자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한국에선 아직 낯선 감독이었기에 그의 작품에 대한 리뷰, 감독 본인의 인터뷰 등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고 출간 이유를 설명했다.
<도둑 맞은 남자> <그들은 모두 거짓말하고 있다> <로잘린> <비올라> <프린세스 오브 프랑스> <허미아와 헬레나> <이사벨라> <너는 나를 불태워>에 이르는 일련의 작품들이 간단한 소개와 평론, 인터뷰, 대담 등의 형식으로 이야기된다. 사이사이 '시네마토그래프' 평자들의 글, 피녜이로와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문성경과 아르헨티나 마르델플라타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마르셀로 알데레테의 대담 또한 실려 책을 풍성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