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구호 뒤에 숨은 현실은 어떨까? 한국의 직장인들, 특히 일과 가정을 동시에 책임지는 부모들에게 52시간 근무제는 약속된 행복을 가져왔을까?
직장인 김 과장의 표정은 무겁다.
"52시간 꼼수 쓰는 회사들 때문에 오히려 더 피곤해졌어요. '자발적 야근'이라는 환상적인 단어가 생겼죠. 강제는 아니지만 안 하면 성과평가에서 불이익..."
"6시면 불이 꺼져요, 문제는 그후부터예요"
2018년 도입된 52시간 근무제는 5년이 지났지만, 한국의 워킹맘과 워킹대디들은 여전히 딜레마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특히 맞벌이 부부에게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더욱 깊게 느껴진다. 공식적으로는 52시간을 지키지만, 비공식적으로는 24시간 대기 상태인 직장인들의 모습이 한국형 워라밸의 현주소다. 한 직장인은 "제 직장은 6시면 불이 꺼져요. 완벽한 52시간 준수! 문제는 그 후부터죠. 카톡, 이메일, 팀즈 메시지가 새벽까지 울려요"라고 토로한다. '지금 확인 안 해도 돼요'라는 말과 함께 오는, 암묵적인 기대감. 다음 날 '어제 제 메시지 못 보셨나요?'라는 수동공격적 질문이 기다리고 있는 현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실질 노동시간은 여전히 OECD 평균을 훨씬 웃돈다. 2022년 기준 연간 1,915시간으로 OECD 평균 1,716시간보다 약 200시간 많다. 독일(1,340시간)과 비교하면 한국인은 연간 약 575시간, 즉 3개월 이상을 더 일한다.
팬데믹은 일하는 부모들에게 양날의 검이었다. 한편으로는 출퇴근 시간을 절약하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과 가정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졌다. 화상회의 중 갑자기 뛰어들어온 아이를 마주한 순간, 많은 부모들은 자신의 이중적 정체성이 모든 동료에게 노출되는 경험을 했다. 사무실에서 유지하던 전문가다운 페르소나가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별에 따른 경험 차이는 더욱 두드러졌다. 맥킨지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기간 여성의 25%가 경력 축소나 퇴직을 고려했지만, 남성은 그 비율이 17%에 그쳤다. 가정 내 무급 노동의 불균형이 팬데믹 상황에서 더욱 악화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