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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잘한 정치인들이 배우지 못한 것... 법원 폭동을 봐라
2025-01-24 07:09:19
오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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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을 아쉬움에 회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안다. 하지만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과거를 돌아보는 존재다. 그 과거를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과거에 비추어 현재, 혹은 미래의 삶을 구상할 수 있으니까.

철저한 시장주의에 기반한 무학과제 도입을 대학개혁이라고 떠들고 인문학이나 기초학문은 당장 돈벌이에 도움이 되지 않기에 홀대받는 시대가 되었다. 한탄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세상이 달라진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나쁜 쪽으로 변하고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런 변화가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그런 흐름 속에서 문학의 자리도 쪼그라들었다. 모두가 글을 읽고 쓰는 시대가 되었다고 하지만 사람과 세상의 의미를 넓고 깊게 바라보는 문학연구와 비평의 자리는 매우 협소해졌다. 그래서 문학의 위상이 달랐던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문학의 힘과 민주주의의 적


대학(원) 시절 내가 다닌 인문대학에는 4.19 세대 비평의 대표자인 김윤식(국문과), 김현(김광남, 불문과), 백낙청 선생(영문과, 이하 호칭 생략) 등이 재직하고 있었다. 나는 김윤식, 김현의 강의는 수강하지 않았지만, 두 분의 이름은 그때도 알고 있었다. 다른 고민이 많았기에 문학 공부의 의미를 깊이 숙고하지는 못했지만, 그때가 내가 다녔던 인문대학의 전성기였지 싶다. 문학의 힘과 위상이 높았던 시절이다.

하지만 김현과 김윤식의 글을 제대로 읽기 시작한 것은 한참 뒤 일이다. 오래전 미국 유학 시절에 김현 전집을 들고 가서 통독했다. 많이 느끼고 배웠다. 김윤식이 쓴 <임화 연구>를 읽고 받은 인상은 강렬했다. 국문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한국 근대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다.

서울대 규장각에서 전시 중인 '혼신의 글쓰기: 김윤식의 한국현대문학사' 기획전을 다녀왔다. 기획전이 끝난 지는 좀 되었지만, 내가 받았던 감흥은 여전히 생생하다. 김윤식이 쓴 책, 원고, 사진, 집필 서재, 언론 인터뷰 동영상을 짜임새 있게 전시해서 그의 학문과 비평 세계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전시 안내 중 아래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연구자로, 비평가로 제가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성실했다면 그것이 사라져 없어진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남아서 힘이 되어 시방 저녁놀 빛, 몽매함에 놓인 제게 되돌아오고 있지 않겠는가. 제가 그토록 갈망하는 표현자의 세계로 나아가게끔 힘이 되어 밀어주고 있지 않겠는가. 여기까지 이르면 저는 말해야 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다행이었다고. 문학을 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예언자가 없더라도 이제는 고유한 죽음을 죽을 수 있을 것도 같다고."( 김윤식, <갈 수 있고, 가야 할 길, 가버린 길>)

이 구절에는 그것이 학문의 세계든 아니든 자기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힘을 쏟는 사람이 가졌던 의지와 보람이 담겨 있다. 김윤식에게 그 일은 글을 읽고 쓰는 일, "표현자의 세계"였다. 이 구절을 읽으며 "문학을 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여기는 마음을 생각하게 된다. 문학 연구자와 비평가로서 문학은 김윤식에게 삶의 일이었기에, 그리고 같은 세계에서 일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절실하게 다가오는 표현이지만, 그것이 직업적인 일이 아닐지라도 문학은 일반 독자에게도 가까이하면 좋은 "다행"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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