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화와 묵념은 일반적으로 앞에 있는 기념탑이나 깃발에 하지만, 이날만큼은 세계 어느 곳에서라도 참전 용사와 관계자들이 한 지점을 향해 일제히 돌아선다. 세계 유일의 유엔묘지. 대한민국의 부산을 향해서이다.
Turn Toward Busan(턴 투워드 부산, 부산을 향해 돌아서다). 이제는 꽤 알려진 행사지만 참전 용사나 가족이 실제 부산의 유엔 묘지를 방문하기란 쉽지 않다. 방학을 맞아 뉴욕에서 날아온 딸아이와 함께 부산의 유엔 기념 공원을 찾았다.
세계 유일의 유엔 전몰 참전 용사의 묘지
이번 방문은 삼대가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자는 올케의 제안 덕에 이뤄졌다. 덕분에 팔순이 넘으신 부모님, 동생 부부와 초등학생 두 조카, 재미 교포인 나와 딸이 천천히 묘원을 돌아보며 서로의 감상을 나눌 수 있었다.
부산 문화회관 건너편의 유엔 기념 공원(남구 유엔평화로 93)은 유엔군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영구 기증된 부지로 현재 유엔 기념 공원 국제관리 위원회(UNMCK) 관리하에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김중업 건축가가 설계한 추모관이 먼저 보인다. 정문 역시 김중업 건축가의 작품이다. 각국의 서로 다른 정서와 종교를 아우르는 건축 구상을 했다고 들었다. 비 소식이 있은 터라, 추모관을 지나 먼저 야외 시설물을 돌아보기로 했다.
"17세요? 너무 어리잖아요. (사촌) 형아 보다도 어린데… 가족이 너무 슬펐겠네요."
어린 조카들의 시선을 가장 먼저 끌었던 것은 '도은트 수로(Daunt Waterway)'였다. 물고기(비단잉어)가 노는 긴 물길 정도로 생각하고 뛰어갔다가 수로 입구의 안내판을 읽은 조카가 조금 놀랐던가 보다. 아마 한번도 군인들의 나이를 생각해 보지는 못했을 듯싶다.
호주 출신의 용사 도은트(J.P. DAUNT, 1951년 11월 6일 전사)는 유엔 기념 공원의 최연소 안장자이다. 그의 희생을 기념하며 조성된 수로 주변에는 그의 조국 호주 참전용사협회의 기부금으로 제작된 벤치들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벤치에 앉아 수로 너머의 묘역을 잠시 바라보았다. 묘지가 완공되기 전까지 전사자들의 유해는 전국 각지에 가매장 되어 있었다고 한다. 언어와 문화, 종교, 지역이 각기 다른 나라에서 건너와 이 땅에서 함께 싸우고 이 땅에서 함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 용사들. 유엔묘지에서만 마주할 수 있는 특별함이다.
수로의 위편에는 각국의 참전 기념비와 묘역이, 아래쪽은 기념 시설물들이 설치된 녹지 공원이 있다. 내가 가장 둘러보고 싶었던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도 녹지 공원 초입에 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 가족은 워싱턴 D.C.에 있는 베트남과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 공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 세워진 추모비를 보면서 느낀 바가 있었고, 이후 추모 공원이나 추모비는 단순한 기림 이상으로 다가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