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모님. 역시 여기서 오래, 많이 보셔서 그런가? 보는 눈이 있으시네. 운동 좀 해 보셨어요? 같이 테니스 해 보시는 거 어때요?"
"어휴~ 일이 너무 힘들어서 운동 같은 건 못해. 하고 싶지 않아."
내가 종종 이용하는 시립 테니스장의 청소·관리를 해 주시는 분과 나눈 대화다. 그는 테니스 코트와 축구장 주변을 돌며 쓰레기를 치우고 나서 한동안 테니스 코트 펜스 밖 벤치나 축구장 스탠드에 앉아 운동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곤 했다. 꽤 즐겁게 구경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직접 운동하는 건 꺼려하셨다.
스포츠가 얼마나 즐거운지, 운동은 힘을 쓰게 하면서도 힘을 나게 한다는 걸 알려 드리고 싶었다. 또한 스포츠 시설의 청소노동은 스포츠 시설과 시설 이용자들을 위한 돌봄이자 필수 노동임에도, 그 노동의 당사자는 스포츠에서 소외돼 있는 현실이 부당하고 불편하다고 여겨졌다.
이러한 생각이 들고 나서 보니 주변에 스포츠를 '할 수 없'거나 '하지 않'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교양수업으로 플로어볼을 지도할 때 열려 있는 문으로 체육관을 흘끔흘끔 바라보는 청소노동자를 알아차렸다. 테니스를 권했더니 '시간도 여유도 없다'고 답한 육아휴직 중인 지인을 통해 나의 무심함을 알아차리기도 했다. 좋은 마음으로 했던 스포츠 권유가 스포츠를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됐다.
'모두를 위한 스포츠'가 되려면
'스포츠로 행복한 삶', '모두를 위한 스포츠'는 생활체육 정책의 오래된 구호이자 목표이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즐기는 스포츠', '유·청소년, 장애인, 여성, 노인 등 소외계층 대상 맞춤형 지원'을 골자로 하는 정부의 생활체육 정책은 그 그물의 코가 너무 듬성하고 커서 누군가 빠지는 일이 많다.
여성·장애인 노동자, 가정에서 온종일 부모나 자녀를 돌봐야 하는 사람 등 복합적인 차별 영역에 있거나 환경·상황 때문에 스포츠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정부 생활체육 정책의 그물에서 빠지는 사람들이다. '모두가 일상에서 일생동안 즐기는 스포츠'라는 의의를 지닌 'Sports for All', 즉 생활체육의 의미가 무색하다. 정책의 그물에서 빠지는 사람이 없도록 모두의 스포츠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