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의 소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기울이는 사람들의 '사소한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아내 그리고 다섯 딸과 함께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펄롱이라는 인물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연금을 받는 미망인의 집에서 일하던 엄마, 아빠가 누군지도 모른 채 사생아로 태어나 주인집에서 살아야 했던 그의 과거가 작품의 배경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여기에 미망인이었던 미시즈 윌슨의 집에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자랐던 덕분에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을 가질 수 있었으며, 이제 한 가정을 꾸리는 가장으로서 석탄 판매상을 운영하고 있는 펄롱의 삶이 작품의 서두에서 소개되고 있다.
힘겨운 상황을 헤치며 살아야 했던 펄롱의 과거가 작품 곳곳에서 길게 제시되어 있으며, 그와 대비되어 현재의 평범하지만 행복한 펄롱의 삶이 그려지고 있다.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다섯 딸들의 미래에 관해 일말의 불안감을 표출하는 펄롱의 모습은 아마도 남성중심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던 당시 아일랜드의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해되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배달을 갔던 수녀원에서 마주친 여자들의 모습에서, 그의 평범했던 일상에서 무언가를 고민하는 모습으로의 변화가 시작된다. 번듯하게 차려입은 수녀들과 달리, 뭔가 감시를 받으면서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여자아이들의 남루한 모습이 그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일요일 수녀원에 석탄 배달을 갔다가, 석탄 야적장에서 형편없는 몰골로 몸을 떨며 갇혀 있던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펄롱은 이 시점에서 자신의 딸들과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를 보면서,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다. 비록 아버지를 알지 못한 채 태어났지만, 누군가의 보호를 받고 자랐던 펄롱의 과거를 제시한 이유가 비로소 드러나는 지점이라고 이해된다. 자신은 미처 알지 못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짐작하거나 알고 있던 수녀원의 실체에 대해서 비로소 마주치게 되었던 것이다. '막달레나 세탁소'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어 왔던 시설에서 '은폐, 감금, 강제 노역을 당한 여성과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임을 저자의 '덧붙이는 말'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수녀원의 권위에 눌려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오랜 고민 끝에 그곳에 감금되었던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펄롱의 모습이 형상화된 아래의 마지막 구절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지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 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