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내 동생도 잃고 아버지도 잃고 이제 내 고향까지 잃으라고? 난 절대 이 집 그냥은 못 줘."
숙현(정애화 분)은 집안의 장손인 손자 태석(이주협 분)에게 악에 받쳐 소리 지른다. 이제 막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유산인 고향 집이 집안의 딸들이 아닌 새파랗게 어린 손자에게 상속된 사실을 알게 되어서다. 태석 또한 할아버지에 의해 자신에게 주어진 정당한 권리를 조금도 내놓을 마음이 없다. 지금까지 가족 간의 관계가 어땠을지는 현재의 모습을 통해 추측할 따름이지만, 집안의 며느리에 속할 엄마와 태석만 화면 한쪽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을 보면 이 문제에 상속 이상의 것이 엮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긴 시간 묵혀 왔을 마음 깊숙한 곳의 감정이다.
영화 <이씨 가문의 형제들>은 집안 마지막 어른이 세상을 떠난 이후 남겨진 가족들의 모습을 그린다. 상속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현실에서도 어렵게 찾아볼 수 있는 만큼 다른 작품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그려진 바 있다. 그래서일까? 서정미 감독은 한 지점을 비틀며 흥미로운 자리 하나를 마련해 낸다. 태석의 아버지이자 숙현의 남동생인, 집안의 유일한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설정. 이 작은 틈으로 인해 극의 전면에 내세워진 가족 구성원 사이의 갈등은 형제간이 아닌, 고모와 조카, 세대 사이의 문제로 옮겨진다. 그리고 이 자리는 서로의 입장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면서도 훨씬 불편한 마음으로 완성해 낸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