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토론회'가 경제와 사회, 정치를 주제로 세 번 열렸다. 문화정책은 사회 분야에서 다루어질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경제 분야의 국가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답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후보가 문화 분야 대표 공약을 경제 분야 토론회에서 밝혔다는 점에 양가감정이 들었다. 소위 '기타 등등'으로 분류되어 왔던 문화 분야를 중요하게 다뤘다는 점이 놀라웠다.
이 후보는 장기적으로 성장 동력을 높이기 위하여 문화산업 육성과 인공지능(AI) 중심의 첨단 기술 산업 투자를 언급했다. 그러나 문화예술을 K-콘텐츠 상품으로서 일면만 강조하고 예술인을 마치 70년대의 '산업역군'처럼 국가와 자본의 이윤을 창출하는 수단으로서 호명했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미 이 후보는 한 간담회에서 문화정책(지원, 복지)이 아닌 '문화산업' 정책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예술인과 문화산업 종사자들을 문화적 가치를 바탕으로 창조적 생산자로 보는 정책적 전환을 전제로 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재명 후보의 '소프트파워 Big5 문화강국' 공약은 그리 낯설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콘텐츠산업 5대 강국 진입' 목표로 융합형 콘텐츠산업 등 콘텐츠의 연구 개발(R&D) 발굴·지원 사업에 투자했던 것처럼 이 후보의 공약은 AI와 같은 고도화된 기술환경에서 문화산업을 발판으로 경제 도약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전문 인재 양성과 전담 조직 신설 추진 공약 또한 이명박의 '선택과 집중'이라는 정책 집행 방향과 유사점이 보인다. 기존의 문화정책 전달 체계로는 예산을 소수정예에 집중하기 쉽기 때문이다. 예술 현장과 협력하기보다 병리적인 관료 행정이 독점적으로 관리했던 것처럼 펼쳐질 수밖에 없다. 지난 경험을 비춰봤을 때 효율과 수월성이 강조되면서 문화예술생태계 파괴,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 위축 등 문화민주주의의 후퇴를 초래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재명 후보 공약을 중심으로 서술한 이유는 타 후보에 비해 문화 분야 공약을 주요하게 다루고 있고 내용상 동시대 문화예술의 위상과 관련한 쟁점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후보들의 문화 분야 공약이 나왔지만 부수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이념에 치우친 불통과 무능으로 평가 받는 윤석열 정부의 '블랙리스트' 정책을 그대로 계승한 공약으로 그마저도 급조한 것 같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지방 분권과 청년 지원, AI 관련 공약을 발표했으나 내용상 가장 허술하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의 공약은 예술인 검열, 차별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블랙리스트 특별법' 제정, 지역별 문화 공공성 확대, 지자체 및 예술감독 인선에 노동조합과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공공인선제도' 확립 등 윤석열 정부에서 초토화된 문화예술 환경과 주권자 국민의 문화 권리 보장을 중심으로 한 문화정책 방향을 잘 세우고 있다. 그러나 선언적인 의미로 읽힌다. 권 후보의 발언에서 한 번도 문화 분야 공약이 언급된 바 없었고, 당 내부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문화산업은 문화예술을 신자유주의에서의 이윤 추구의 장으로 소환하면서 예술인의 직업적 권리는 탈각시킨다. 소위 K-컬처로 대표되는 콘텐츠 상품이 초국적 기업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생산-거래-촉진-소비되는 환경에서 발생한 경제효과를 공공으로 환원하는 데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에이전시나 창작 노동자 착취에 대한 문제 해결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문화정책은 후보들의 공약처럼 단순히 여가를 즐기기 위한 복지 서비스이거나 예술가를 위한 창작 지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에 기대하는 문화예술은 내란을 넘어 다양하고 평등한 존재들의 자유로운 삶을 바탕으로 건강한 사회의 공동체적 가치를 형성하고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힘'이다. 새롭게 열릴 문화정책은 시민들의 삶에 조응하고 문화적, 사회적 가치를 바탕으로 주권자의 참정권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며 공적 가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수립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