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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투쟁으로 존재감, 태극기와 기독교에 갇힌 황교안
2021-09-21 11:29:25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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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용산 출생. 1·4후퇴 때 월남한 황해도 출신 부모 밑에서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고 노회찬 의원과 함께 경기고를 다녔으며, 서울대 법대를 가기 위해 재수까지 했지만 실패하고, 성균관대 법대에 77학번으로 들어갔다. 덕분에 이후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성시경'(성균관대, 고시, 경기고)으로 꼽혔다.

담마진으로 군대 면제를 받은 뒤, 25세에 사법시험을 패스하여 김진태와 함께 대표적인 공안검사로 이름을 날렸다. 별명도 무려 'Mr.국가보안법'. 이후 실제로 공안 수사의 교과서인 <국가보안법 해설>(1998)을 쓰기도 했다.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 임수경 방북 사건,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 등 대중의 뇌리에 깊이 박힌 굵직굵직한 공안사건들을 주로 담당했고, 이런 이력은 이후 법무부장관 시절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에도 영향을 끼쳤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직접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했고, 변론에 나서기도 했다.

2011년 연수원 동기인 한상대 검찰총장이 임명되자, 검찰의 전통에 따라 검사 생활을 그만두고 변호사 생활을 하던 중, 2013년 박근혜 정부의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정국을 뜨겁게 달구던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 윤석열 수사팀장에게 압력을 가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2015년 '성완종 리스트'로 이완구 국무총리가 최단 재임 총리로 사임하자 제 44대 국무총리로 임명되었다. '최순실 사건'이 터진 뒤에는 대통령 탄핵 소추 의결서가 청와대에 전달된 2016년 12월 9일부터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5월 10일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냈다.

2019년 1월 자유한국당에 입당, 2월 말에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소위 '태극기부대'와의 밀월을 통해 1년이란 시간 동안 장외집회의 동력을 유지하며 강경투쟁을 벌였지만 , 그 결과는 2020년 4월 총선 대패로 나타났다. 그 책임을 지고 모든 당직에서 사퇴했지만 이것이 정계은퇴는 아니었다. 2021년 2월 총선 참패에 대한 회고록을 출판하더니 7월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 풍부한 국정경험과 점잖은 이미지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 거기에다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소위 '그랜드 슬램'을 이루었던 만큼 지지자들은 그의 국정경험을 커다란 자산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그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2016년 겨울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그 유래가 없던 불안정한 시기로 그 누구도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청와대가 계엄령 검토를 지시했던 것으로 알려진 그 시기에 큰 사고 없이 정권이 이양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황교안의 대통령 권한대행의 위기관리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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