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뉴스통신=윤석원 기자] 글로컬대학 대구보건대학교(총장 남성희) 인당뮤지엄은 23일부터 내년 1월17일까지 조각가 김인겸(1945~2018)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기획전 '김인겸: 공간의 시학(Kim In Kyum: Poetics of Space)'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로비와 1~5전시실, 잔디광장까지 인당뮤지엄 전관을 아우르며, 조각·드로잉·영상·모형 등 총 48점을 선보인다.
김인겸은 자신의 예술세계를 '정신적 영역을 열어가는 조각'이라 일컬었다. 물질을 다루는 조각의 본질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음/부재로 존재를 드러내는 영역으로 옮아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김인겸의 조각은 곧 '사유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1973년 국전에 입선하며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이래 40년을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조각과 드로잉, 설치형 프로젝트를 진행한 작가의 예술 여정은 '환기'(1980~1986), '묵시공간'(1987~1991), '프로젝트'(1992~1995), '묵시공간'(1996~1998), '빈 공간'(1999~2006), '스페이스리스'(2007~2011) 등의 시리즈로 진행됐다. 이번 전시는 1988년 '묵시공간'부터 2016년 '스페이스리스' 드로잉을 포함하는 전 생애에 걸친 작품을 포함한다.
1988년 김인겸은 첫 개인전, '묵시공간'을 개최했다. 이후 '묵시공간'은 작가가 평생에 걸쳐 천착한 주제가 된다. 이번 전시는 그해에 제작한 '묵시공간'(1988)을 살펴볼 수 있어 의미가 새롭다.
1995년 한국관이 첫 문을 연 제46회 베니스비엔날레에 김인겸은 윤형근, 전수천, 곽훈 등과 함께 참여했는데, 이때 당시 출품작 '프로젝트21-네추럴 네트'의 모형과 한국관 설치 영상을 관람할 수 있다. 또한, 이에 앞서 1992년 미술회관(현 아르코미술관)에서 개최한 전시 '프로젝트-사고의 벽'(1992)의 모형이 현장 촬영 영상과 함께 전시된다.
두 모형은 모두 작가가 직접 제작한 것으로, 전시 준비 단계에서 언제나 해당 전시공간의 모형을 만들고 그 안에 작품을 배치해 보곤 했던 작가의 치밀한 성품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작 '프로젝트21-네추럴 네트' 모형은 현재는 리모델링을 거쳐 달라진 1995년 개관 당시 한국관의 모습을 보여주어 사료적 가치 또한 지니고 있다.
드로잉 스컬프처(Dessin de Sculpture) 1997, Korean Ink on Leaflet, 42 x 59㎝.(자료제공=대구보건대학교)
1990년대 행한 두 개의 프로젝트는 기존의 조각 개념을 뛰어넘는 '인스톨레이션'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지표가 되는 작품이다. 특히 '프로젝트-사고의 벽'(1992)은 하나의 작품이자 프로젝트로 명명됐으며 전시 자체였다. 이 전시를 통해 김인겸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는 사유의 공간으로 조형의 지평을 확장하게 된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이후 1996년 프랑스 퐁피두센터로부터 초청을 받아 도불한 작가는 2004년 귀국까지 8년간 프랑스에 체류하며 작업했다. 이 기간 제작한 작품 중 3점의 '드로잉 스컬프처(Dessin de Sculpture)'는 이번 전시를 통해 최초로 공개된다. 작가가 사용한 파리 퐁피두 센터 안내 리플릿에 '1947~1997 Made in France'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작가는 프랑스 현대미술 50주년 기념의 공간에 먹을 사용해 겹겹이 서 있는 조각을 드로잉했다.
조각가 김인겸의 드로잉은 조각과 같은 무게와 품격을 지닌 창작이다. 그가 '이미지 조각'이라 부른 '스페이스리스' 시리즈는 '회화적 조각'으로 부를 수 있다. 평면과 입체, 실상과 허상, 물질과 정신, 존재와 부재 등의 개념을 질문하고 그 경계를 넘나드는 김인겸 예술의 '혼성과 융합'이 여기에 있다.
뮤지엄 로비에 전시된 '묵시공간-존재(Revelational Space-Being)'는 총 7개의 작품을 하나의 군집으로 모았다. 단독으로 독립된 작품이자 공간에서 상호작용하는 설치작품으로 작동한다. 각기 다른 물성-녹슨 철, 청록색 브론즈, 투명 아크릴, 불에 탄 나무 등으로 제작한 작품이, 윗면이 없는 철제 테이블을 중심으로 모여있다. 존재가 남긴 흔적, 그렇지만 지금은 부재한, 그러나 존재하는 '드러나는 공간-존재'이다.
인당뮤지엄 김정 관장은 "이번 전시는 조각이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인식하게 하고, 사유하게 하는 예술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김인겸: 공간의 시학'은 조각의 정의를 해체하고, 공간과 사유, 존재의 의미를 재조립한 한 예술가의 여정을 통해, 오늘날 예술의 본질과 인간 존재의 깊이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