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여성이 제안한 아이디어 하나가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을 움직였다. MLB는 이를 흔쾌히 수용했고, 그 결과 여성들이 직접 그라운드에 선 특별한 장면이 탄생했다. 바로 '2024 MLB 서울시리즈' 얘기다.
지난해 3월,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MLB 서울시리즈'에 앞선 네 차례 연습경기에 3루 파울라인에 여성들이 섰다. 바로 '볼걸'이 배치된 것이다. 기존 프로야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볼보이'와 같은 역할로, 타석에 선 타자의 타구가 파울이 되면 파울볼을 수거하며 경기를 지원하는 역할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선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장면이었다.
한국 프로야구에선 한 번도 없던 장면
이 신선하면서도 의미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것은 바로 한국인 여성 권소라씨다. 당시 권씨는 서울시리즈에서 장내 아나운서·전광판 '오퍼레이터'로 채용돼 시리즈 기획 단계부터 회의에 종종 참여해왔다. 필자와 연락이 닿은 그는 "여성들도 이 귀한 기회에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볼걸 역할을 제안드렸다"고 말했다.
권씨는 당시 사회인 여자야구팀인 '퀄리티스타트'에서 직접 야구를 하고 있던 터라 자연스럽게 야구하는 여성이 참여하는 아이디어까지 이어졌던 모양이다. 그는 "MLB 측에 볼걸을 제안한 의도는 한국에도 야구를 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더불어 멋진 플레이를 하는 스타 선수들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자극과 영감, 자양분이 될 것이라 믿었다"고 했다.
MLB와 계약을 맺은 대행사 측에서는 당시 권씨의 구상이 '좋은 생각'이라며 MLB에 얘기해보겠다고 했다. MLB 사무국은 서울시리즈가 임박한 시점에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부랴부랴 자신의 소속팀 멤버들을 대상으로 선착순 4명을 모집했다. 당시 반응은 뜨거웠다. 순식간에 4명이 마감됐고, 다들 환호했다고.
그렇게 당시 그라운드에 선 4명의 여성은 홍예진·김가은·안지원·정부순씨. 샌디에이고와 국가대표팀 간의 사전경기에서 3루 파울라인에 섰던 홍예진씨는 필자와 한 전화 통화에서 "서울시리즈에 앞서 대표팀, 프로야구팀과 MLB팀간의 연습경기가 총 네 차례 있지 않았나. 그 네 경기에 한 명씩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처음으로 해보는 볼걸 역할에 긴장되진 않았을까. 홍씨는 "정말 긴장이 많이 됐다. 특히 파울이 아닌데 내가 공을 미리 수거하는 실수를 할까 걱정이 됐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다행히 4명의 볼걸은 수년간 다져진 직·간접적 야구 경력을 바탕으로 어떠한 실수도 없이 '안정적'으로 역할을 완수했다.
홍씨는 "생각보다 타구 판단이 쉬웠다. 강습 타구도 거의 안 날아왔다. 볼걸로 중요한 경기에 직접 참여해 보니 정말 재밌었다. 당시 샌디에이고에서 뛰던 유릭슨 프로파(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대표팀 외야수 추재현(두산 베어스)이 외야에서 나와 함께 캐치볼을 해줬다. 정말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고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