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2024년 5월 ) 나는 제주에서 홀로 살고 있었다. 퇴직하기 전부터 계획한 제주살이는 퇴직과 함께 빠르게 진행되었다. 처음엔 두 달을 예상하였지만 딱 100일을 채웠다. 두 달 살아보고 생각해 보기로 했는데 40일을 더 살았던 것이다.
홀로 제주시 노형동에 떨어진 나는 오피스텔을 임차하여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최소한의 살림살이를 장만하고 뚜벅이로 살기 시작했다. 식사는 가능하면 숙소에서 해 먹었고, 트레킹 하는 날은 동네 식당에서 허기를 해결했다. 제주도 전체의 버스교통시스템은 의외로 잘 되어 있어서 자가용 없이도 불편하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오히려 그런 조건이 본디 나의 제주여행의 정체성을 충족시켜 주었다. 걷고 싶었다. 머리를 비우고 매일 걷고 싶었다. 지나온 삶의 여정에서 진득하게 묻은 때를 벗겨내고 싶은 욕구가 앞섰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매일 걸을 수는 없었다. 도서관에 가서 쓰고 있던 글을 마무리 지어야 했고, 우천으로 인해 걷기를 할 수 없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매일 도서관 생활과 트레킹 일정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전반적인 제주를 체험하기 위해 시내버스를 타고 애월, 서귀포, 성산 등 동서남북을 돌아다녔고, 중간에 내려 무작정 걷기도 했다. 그러면서 버스교통 체계와 지리적인 안목을 습득하였다. 최종 목적은 가능하면 많은 오름을 접하는 것이었다. 인터넷을 뒤져 미비한 정보도 얻었다.
육지 사람들에겐 제주 하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키워드는 관광일 것이다. 나도 관광을 목적으로 친구들이나 가족과 함께 제주에 여러 번 찾아왔었다. 펜션을 얻어 안락함을 향유하고, 렌터카로 제주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바다 풍경과 한라산의 위용에 탄성을 토해내며 사진을 연신 찍었다. 때로는 값비싼 해산물이나 흑돼지 전문음식점을 찾아다니며 '먹방' 투어를 하기도 하고, 잘 조성된 리조트나 전시관 등을 방문하기도 했다. 중간에 잠시 곶자왈과 바닷가를 걷기도 했지만 그것은 관광의 한 부분에 불과했다. 아마도 내가 골프를 쳤으면 골프장을 겸비한 리조트도 찾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