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크
오마이뉴스
대박난 산천어축제의 이면, 현수막에 담긴 잔혹한 진실
2025-05-12 20:12:49
김고은
  •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 카카오톡으로 공유하기
  • 트위터로 공유하기
  • url 보내기
2019년 희지는 친구들과 돈을 모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으로 여행을 떠났다. 정보가 별로 없고 관광화도 크게 되어있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일까, 희지는 그곳에서 이전까지 상상해 보지 못했던 세계를 만났다. 말들이 끝없이 굽이치는 해발 3000m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었던 것이다.

"초원에서 동물들을 봤을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동안은... 뭐라고 해야 할까요? 너무나 당연하게 지구에 인간만 살아가는 것처럼 생각했던 거예요. '아 맞아, 지구라는 행성에는 다양한 생명들이 함께 사는 곳이지. 나도 여기에 녹아들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물론 동물원이나 승마장에서 말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곳들은 엄연히 인간의 터전이다. 인간이 구획한 곳에서 인간이 제공하는 음식을 먹고 주어진 거처에서 잠을 잔다. 반면 초원의 동물들은 발 닿는 만큼이 자신의 세계가 되었다. 희지는 처음으로 내가 사는 곳이 '인간의 터전'이 아니라 '지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인간의 터전'에만 머무는 인간일 수 없게 되었고,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사실 그전까지는 하고 싶은 게 없었거든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취향도 뚜렷하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만 사는 사람이었어요. 여행에 다녀온 뒤에는 살면서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죽더라도 이 세상에 나의 흔적 하나는 남기고 죽어야겠다."

간혹 나의 세계가 작아 보이는 순간이 찾아온다. 예상하기는커녕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어떤 '다른 세계'가 내게 성큼 다가온 탓이다. 동물권 활동가가 되어야겠다는 야망을 갖게 된 희지는 요리사의 길을 접고 2021년 '동물해방물결'의 활동가가 되었다.

산천어는 어린이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희지는 동물해방물결 캠페이너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다양한 생명이 함께 살고 있음을 알리는 일을 한다. 물에 사는 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2025년 1월, 희지는 동물해방물결 동료들과 강원도 화천에서 열린 산천어축제에서 커다란 현수막을 펼쳤다. 현수막에는 한 산천어의 모습이, 특히 얼굴과 무늬가 확대되어 있었다. 산천어축제에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산천어를 보게 될 테지만, 얼굴과 무늬를 똑바로 마주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터였다.

산천어는 타원형의 반점 무늬를 가지고 있다. 반점 무늬는 산천어축제 마스코트에서도 볼 수 있다. '파마크'(parr mark)라고 부르는 이 무늬는 치어에게서 나타나는 것으로, 대부분은 성장하며 사라지거나 희미해진다. 산천어는 어쩌다가 어린이에게 나타나는 무늬를 계속 간직하게 되었을까?

산천어는 '토종 송어', 즉 '시마연어'와 같은 종이다. 하지만 횟집에서 보게 되는 '송어'나 '연어'와는 다르다. '송어'와 '연어'는 모두 외국에서 수입되어 온다는 공통점이 있다. '송어'는 무지개송어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일생을 민물에서 산다. 북유럽출신 '연어'는 강으로 돌아와 산란을 끝낸 뒤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이들과 달리 시마연어는 바다에서 강으로 돌아와 산란을 마친 뒤 죽는다. 소설 <연어>의 주인공이 그들이다.

시마연어가 낳은 자식 중 몇몇은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바다로 나아간다. 타원형 반점이 사라지면 바다로 나아갈 준비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떤 어린이들은 바다에 가지 않고 강에서 계속 살기로 한다. 그들이 산천어다. 어린 시절의 무늬를 간직한 산천어는 크기도 시마연어의 1/3(약 20cm)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는 산천어에 대해 아직 잘 모른다. 연어가 어떻게 다시 강으로 돌아오는지 알지 못하듯이, 어떤 연어의 아이들이 강에 남는지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산천어가 화천에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화천에서 산천어축제를 하게 되었을까? 한 기획자가 '산'과 '물'과 '어류'가 함께하는 축제를 해보면 좋겠다며 제안했고, 당시 군수가 산천어의 어감이 좋다며 채택했다. 본래 화천과 산천어는 큰 관련이 없었지만, 이 축제가 크게 성공하면서 매년 화천을 위해 약 60만의 산천어가 양식되고 있다.

산천어는 양식장에서 화천으로 향하기 전에 5일 동안 굶는다. 좁은 공간에 갇혀 차로 이동하다가 토하며 죽는 이들이 생기고, 물이 오염되며 다른 산천어가 또 죽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산천어축제에 투입되기 전에도 굶어야 한다. 회를 떴는데 사료 찌꺼기가 나오면 안 되기 때문이다. 굶으며 좁은 시멘트 바닥과 플라스틱 통을 전전하던 산천어는 죽기 직전에 진짜 땅바닥을 만난다. 떼를 지어 선회하기를 몇 차례, 얼마 지나지 않아 벌레인 척하는 가짜 음식 모형에 속아 죽음을 맞이한다. (<'저 힘찬 연어'는 어떻게 통구이가 되었나>, 남종영, 한겨레, 2019)

산천어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맨손잡기다. 10시 정각부터 4시 정각까지 매일 7차례에 걸쳐 열린다. 동그란 수조 바깥에는 구경하고 응원하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정각이 되면 산천어축제 반팔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수조로 뛰어든다. 맨손잡기에는 어떤 이들이 참여할까? 산천어축제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다. 공식적으로 14살 이상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전체 내용보기
주요뉴스
0포인트가 적립되었습니다.
로그인하시면
뉴스조회시 포인트를 얻을수 있습니다.
로그인하시겠습니까?
로그인하기 그냥볼래요
맨 위로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