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분기(1~3월) 경제 성적표가 발표됐다. 충격적이게도 2025년 1분기 우리나라 경제는 그 전 분기(2024년 10월~12월)보다 0.2% 쪼그라들었다. 좀 더 길게 보면, 지난 1년 내내 매 분기 경제성장률이 0.1% 이하를 기록했다.
이는 전례 없는 장기 침체다. 우리나라 경제는 경제위기를 겪더라도 1, 2분기 지나면 곧바로 튀어 오르곤 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도 그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그랬다. 더 멀리 가서, 2002년 가계 신용카드 대출 부실 사태, 1997~19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도, 잠시 한두 분기 마이너스 성장하긴 했지만, 금세 크게 반등하곤 했다.
앞으로가 문제인데 긍정적 전망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말 정부는 올해 우리나라 경제가 2.2%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가, 올 1월 1.8%로 낮췄다. 2월에 들어서 KDI와 한국은행도 각각 1.6%, 1.5%로 전망치를 낮췄다. 그리고 4월 IMF는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1.0%로 전망했다.
이런 국제기구의 비관적 전망은 더 심각한 경고로 읽힌다. 우리나라에 대한 국제 사회의 신뢰가 하락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월가의 신용평가사 일부가 우리나라 국가 신용도 하향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우리 기업은 더 많은 이자를 지급해야 하고, 심하면 아예 자금조달이 막힐 수도 있다.
작금 경제위기의 원인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많은 언론이 미국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이나 우리나라 정치적 불안을 원인으로 꼽는다. 하지만 이는 고민 없는 인상비평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의 직접적 원인은 내수 부진이다. 올 1분기 해외부문(순수출=수출-수입)은 0.3%p 증가했다. 반면, 내수는 0.6%p 마이너스를 기록했다(아래 모두 전기대비). 내수 중에서도 건설투자가 3.2%, 설비투자가 2.1%, 그리고 민간소비가 0.1% 각각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한마디로, 외환(外患)이라기보다는 내환(內患)이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이 와중에도 정부는 지출을 전기 대비 0.1% 축소했다는 사실이다. 경제에 충격이 올 때, 정부가 완충 활동을 하는 것은 보편적 상식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는 전혀 그럴 의도가 없어 보인다. 일단은 대통령 부재 상태라 그러려니 하자.
모든 문제는 부채로부터
내수를 급락시킨 가장 중요한 원인은 거대한 가계부채(자영업 부채 포함)이다. 우리나라 가계대출 잔액은 1927조 원(2024년 말)이었고, 자영업자 대출은 1120조 원을 넘어섰다. 가계 대출 중 대부분이 주택담보대출(약 1124조 원)이다. 가계는 집을 사느라 빚을 졌고, 자영업자는 코로나 때부터 장사가 잘 안 돼 빚이 늘었다.
그런데, 이 둘은 서로 연결돼 있다. 가계는 집을 사느라 진 빚의 원리금을 갚느라 소비를 줄였다. 정확한 통계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개략적으로 계산해보자. 2024년 가계 대출금에 대한 연평균 금리를 5%라 하면 이자부담만 약 96조 원에 이른다. 여기에 이자와 함께 상환하는 원금을 더하면, 가계의 부담은 이것의 몇 배로 증가한다. 다른 곳에 돈 쓸 여력이 없어진다.
2024년에 여행·외식·숙박이 17.6%, 여가·문화생활이 15.2%, 의류·신발 소비가 14.9% 감소했다는 사실이 이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이는 자영업이 집중된 업종이기도 하다. 자영업 영업 부진은 빚으로 메워온 듯하다. 더구나 코로나 전파를 막기 위한 영업 제한으로 타격을 받을 때에도, 우리나라 정부는 보상한 것이 아니라 돈을 빌려줬다. 그 빚에 대한 상환 유예기간이 지나고, 이제 갚으라고 독촉한다.
가계의 빚은 이제 산업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경제성장률 하락의 일등 공신은 부동산 투자와 기업의 설비투자 급감이었다. 아파트 광풍이 불자, 더 오를 것이란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너도나도 빚내서 집을 샀다. 부동산 개발업자는 이 틈을 타고 거의 모든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아파트를 사줄 사람이 없다. 이미 빌린 돈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아닌가. 분양이 안 되자, 부동산 개발업자들도 급하게 투자를 줄였다. 그동안 부동산 업자들이 금융권(특히 제2금융권)에서 빌린 채무도 상환을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내수를 지향하는 일반 기업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일반 가계가 빚에 짓눌려 소비를 줄이자, 우리나라 내수 산업의 판매도 하락했다. 이번 경제 성적표에서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한 부분이 '재고'였다. 올 2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도 73.1%에 머물고 있다. 재고가 쌓여가고, 이미 도입해 놓은 설비의 27%가 놀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설비투자를 기대하긴 어렵다. 그래서 설비투자도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