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집무실과 더불어 국회의사당을 세종시로 이전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당장 정치권의 시선은 세종시보다는 서울 서초동과 안국동을 향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정치나 입법으로 해결돼야 할 사안들이 법원이나 헌법재판소로 가는 '정치의 사법화'가 심화되고 있다.
지난 1일 대법원이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판결하면서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한 것도 그런 현상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대법원은 이 후보의 김문기 관련 발언과 백현동 관련 발언에 대하여 공직선거법 제250조 제1항에서 정한 허위사실 공표죄로 판단해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대선에 출마할 정치인이 국민들 앞에서 크든 작든 거짓말을 했다면 마땅히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이 문제를 법원으로 떠넘긴 세력의 실제 의도가 '선거풍토 교정'에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사법부의 힘을 빌려 정치적 경쟁자를 쫓아내려는 의도가 강하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정치인의 권력, 사법부 통해 빼앗으려고 했던 일들
노무현 대통령은 4·15총선을 앞둔 2004년 2월 24일 방송기자클럽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한다"는 발언을 해 3월 12일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탄핵소추를 당했다. 그는 5월 14일까지 직무를 정지당했다.
이 발언을 헌법재판소로 갖고 간 세력이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성을 높이기 위한 충정으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정치 질서를 흔드는 진보적인 서민 대통령, 고졸 대통령을 내쫓으려는 의도가 국민들의 눈에는 더 많이 비쳐졌다. 정치권의 힘으로는 노무현을 어찌할 길이 없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맡긴 측면이 컸다.
정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사법부로 넘긴 인상적인 사건은 1979년에도 있었다. 그해 5월 30일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김영삼 총재는 9월 8일에 서울민사지방법원에서 총재직 정지 가처분 결정을 받았다.
5·30 전당대회에 참가한 일부 대의원의 자격에 문제가 있다며 가처분을 신청한 쪽은 김영삼을 반대하는 신민당 원외지구당 위원장들이지만, 소송의 배후에는 박정희 정권이 있었다. 신민당 대의원 자격에 관한 제보를 받은 신형식 민주공화당 사무총장이 '정치도의상 거론할 수 없다'며 묵살했는데도 사건이 법원으로까지 가게 된 배경에 대해 2016년 7월 10일자 <프레시안>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제179회는 이렇게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