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크
오마이뉴스
14년 사랑하다 헤어집니다, 축하해 주세요
2025-05-03 19:42:14
김성호
  •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 카카오톡으로 공유하기
  • 트위터로 공유하기
  • url 보내기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 한 커플이 있다. 14년 열애 끝, 헤어짐을 앞둔 남녀다. 말이 14년이지 웬만한 부부보다 더 산 둘이다.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도 남았을 사이, 세상 가까운 친구이자 연인인 두 사람이 그 관계의 끝을 고하고자 한다.

만나면 헤어지는 게 인간사 순리다. 그러나 끝 앞에 초연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 것인가. 때가 되어 보내는 부모의 죽음 앞에서도 통곡하는 게 우리 인간이다. 하물며 인생사 한창 가운데 갈라져서 각자 볼일 보자는데 웃으며 헤어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둘의 마음이 한날한시에 꼭 같이 소실되는 경우는 세상에 얼마 되지 않는다. 어느 쪽은 마음이 한 스푼쯤 더 남았고, 어쩌면 스푼이 아니라 국자, 아예 대접일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이별이 어찌 담담할 수 있을까.

여기 이 커플은 14년의 열애 끝에 깔끔한 갈라짐을 준비하는데, 나름대로 철학에 기반한 일이라 한다. 저들 자신의 철학은 아니고, 현대 철학을 즐겨 읽는 여자의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해왔다는 말이라고. 연인 간에 진정으로 축하받아야 할 일은 만남이 아니라 헤어짐이라는 이야기. 헤어짐이란 둘이 더는 관계로써 행복할 수 없다는 것으로, 헤어짐이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라는 얘기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해 기꺼이 오늘의 문제를 타파하는데 어떻게 축하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의 중심 이야기다.

차기 거장 손꼽히는 트루에바의 신작


감독 호나스 트루에바는 이 시대 주목받는 젊은 영화인이다. 1981년생으로, 이제 40대 중반인 그가 언젠가 세계 최상급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는 작품을 찍으리란 데 적잖은 이가 뜻을 같이한다. 스페인 출신인 그는 빅토르 에리세, 페드로 알모도바르,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등 십수 년 상간으로 굵직한 이름들이 등장한 스페인 영화의 후기지수 중 제일로 지목돼 왔다. 2019년 작 <어니스트 버진>과 2021년 작 <누가 우릴 막으리>가 이 시대 재기 발랄한 작가 한 명이 등장했음을 알린 가운데, 신작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는 지난해 제77회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돼 최고상에 준하는 유로파 시네마 라벨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트루에바는 그저 유망주를 넘어 거장의 반열에 오르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는 주변에서 가장 이상적인 커플이란 평가를 한 몸에 받는 알레(잇사소 아라나 분)와 알렉스(비토 산즈 분)의 이야기다. 성격이면 성격, 취향이면 취향, 그야말로 모든 게 잘 맞아 천생연분이란 말이 절로 나오던 이 커플이 어째서 헤어지기로 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둘은 헤어짐을 작정하고 있고, 어쩌다 말이 나온 김에 이별파티를 제대로 열어보기로 결정한다. 결혼식은 아니더라도 이별파티 한 번은 제대로 열자고, 주변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을 모아보자고 말이다.

영화는 알레와 알렉스가 파티에서 연주할 연주자부터 참석할 친구들까지 한 명씩 섭외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알레는 영화감독으로 신작을 준비 중에 있고, 배우인 알렉스는 다음 작품을 고르는 데 열중이지만, 무엇도 이별파티보다 큰 일이 될 수는 없다. 자칫 이별파티가 엉망이 되지 않도록 마치 결혼식처럼 세심히 준비하는 과정이 어딘지 낯섦 가운데 익숙함이 느껴진다.

14년 연애의 끝을 지켜보고 있자면

전체 내용보기
주요뉴스
0포인트가 적립되었습니다.
로그인하시면
뉴스조회시 포인트를 얻을수 있습니다.
로그인하시겠습니까?
로그인하기 그냥볼래요
맨 위로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