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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소설 장준하 21] 도적떼에 붙잡혀 위기일발
2025-05-09 15:05:41
김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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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평한선에 가까울수록 중압감을 느껴야 했다.

지난날 행군 중에 철도를 지날 때 겪었던 어려움 때문이었다. 중국군을 따라 철도 가까이 도달하였을 때 하남(河南) 작전에 출동중이던 일본 기병대의 습격을 받아 후퇴하게 되었다. 이때 겁에 질린 중국인 추차 인부가 도망하여 일행들이 번갈아가며 밀고 가야 했다. 다시 걷고 달려서 새벽 2~3시 사이에 행렬은 무사히 철도를 건널 수 있었다.

일행이 사력을 다해 걸어서 50리의 철로를 넘었을 때 먼동이 터올랐다. 섣달 초하루가 밝은 것이다. 일행은 천신만고 끝에 일본군의 경비 지역을 벗어나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중국군은 다른 길로 가고, 장준하 일행만 남게 되었다. 이제는 단독으로 중경까지 가야하는 것이다. 일행 53명을 4개 그룹으로 편성하여 일정한 지역에 가서 합류하기로 하였다. 너무 많은 행렬이 함께 걷다 보니 여러 면에서 비능률적이어서 분산하여 조별로 행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선발대가 먼저 출발하여 숙식을 할 수 있는 마을을 찾아가 취사준비를 하도록 하면 후발대가 조금이라도 더 쉴 수가 있었기에 이 같은 조별 행군계획이 마련되었다. 장준하는 여전히 취사책임을 맡은데 이어 선발대의 책임까지 맡게 되었다. 그동안 임천에서 떠날 때 가져온 일행의 양식을 점검했다.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마을에 도착하면 지역 행정기관의 책임자를 찾아 중국군의 증서를 보이고 유숙을 요청하면 대개는 이를 들어주었다. '중국군 장교' 증서의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행렬은 보통 하루 1백 리 정도를 걸었다. 그러던 어느날 오후 4시경 일행을 가로막는 거대한 산맥의 입구에 도달했다. 방향을 잘못 잡아 들어온 산길이었다. 낭떨어지 사이로 세워진 고성을 지나기 위해서는 이 성문을 통과하는 길밖에 없었다. 파수병들이 성문을 지키고 있었다. 일행이 고성 안으로 들어가자 파수병들은 성문을 닫아버렸다. 알고보니 꼼짝없이 성안에 감금된 것이다. 이 정체불명의 사나이들은 중국의 도적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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