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반도체 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내세우며, 전례 없는 규모의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대선 후보들도 AI·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와 성장률 제고를 앞세운 공약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도체 올인' 전략이 과연 한국 경제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과잉투자와 산업공동화의 현실적 위험
반도체 메가클러스터와 용인 국가산단 등 2047년까지 622조 원, 2052년까지 360조 원 등 30년에 가까운 초장기 투자가 계획되어 있다. 세액공제, 정책금융, 인프라 지원 등 각종 혜택이 더해지고, 반도체 특별법을 통한 추가 지원과 근로시간 규제 완화까지 논의 중이다.
하지만 이런 지원은 미국, 유럽, 일본, 대만 등 경쟁국과 비교해도 과도하며, 생산능력 증대에 치우쳐 있어 글로벌 과잉생산과 과잉투자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경쟁국들은 주로 자국 내수 충족과 기술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요컨대, '수입대체 산업화'(Import Substitution Industrialization)로 국내 생산을 확대하고, 여기에 미국은 TSMC, 삼성전자 등 해외 첨단 반도체 생산 기업에서 기술이전(탈취)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반도체 산업 전략은 생산능력 증대에 있다. 삼성전자는 6년 연속 세계 1위의 설비투자액을 기록했고, SK하이닉스도 글로벌 4~5위권이다. 여기에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용인반도체 국가산단 설치 등 주로 설비와 생산능력 증대에 꽂혀 있다. 미국 등 해외 공장 증설까지 포함한다면, 반도체 생산능력과 시장 점유율은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한다.
문제는 국내 생산능력은 세계 수요의 21.9%에 달할 전망이지만, 국내 수요는 5.4%에 불과해 상당량을 해외에 팔아야 한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유럽, 일본 등 주요 경쟁국(반도체 수입국이기도 하다)의 내수 중심 정책, 공급망 재편, 시장 봉쇄로 판로가 점점 좁아지고 있어 과잉생산과 가격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능력 증대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반도체 산업이 그대로 자멸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과잉투자는 실제 시장 상황과 괴리가 크다. 최근 5년간 한국 반도체 수출은 2018년 830억 달러에서 2023년 429억 달러로 반토막이 났다. AI 반도체 호황에도 메모리 반도체 수요는 둔화했고, 글로벌 투자은행도 한국 반도체 산업의 정점을 경고한다. 삼성전자는 2024년부터 평택 신공장(P4, P5, P6) 건설을 중단하고, 기존 생산라인도 가동을 멈추는 등 투자 축소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평택·용인 등 반도체 클러스터 인근 지역의 상권, 부동산 시장, 지식산업센터 등도 침체를 겪고 있다.
이처럼 30년 장기 투자계획은 시장 급변에 취약하다. 투자계획이 철회될 경우, 대규모 산단과 인프라는 산업 공동화와 지역경제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평택캠퍼스 신공장 건설을 중단했을 뿐만 아니라, 2025년 파운드리(위탁생산) 설비투자를 전년 대비 절반으로 줄였다. 이는 수주 부진과 첨단 공정 지연 등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대기업의 투자계획이 언제든 축소·철회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만약 대기업이 투자에서 손을 뗀다면, 거대한 산단과 인프라는 산업 공동화와 지역경제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