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최후의 장치이며, 사법은 그 장치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다. 그 신뢰는 단지 판결의 결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판결이 도달하는 방식, 곧 절차의 정당성, 해석의 일관성, 판단의 독립성에 대한 사회 전체의 합의에서 비롯된다. 사법이 공동체 안에서 차지하는 독립적 지위는, 그 자체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의 총합임을 전제로 한다. 그 책임은 제도보다 사람의 지적 자각 위에서 작용한다.
이 자각이 약화 될 때, 사법은 권위가 아니라 의심의 대상으로 바뀐다. 법관은 공동체의 보편적 이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개인의 신념이나 정치 성향에 따라 판단하면, 법은 중립의 언어가 아니라, 특정 권력의 수사(修辭)로 변질한다. 그 순간 법은 갈등을 구조화하는 장치로 작동하며, 사법의 독립성은 폐쇄성과 자기 보존의 기제로 의심을 부르게 된다.
특정한 판결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공동체가 사법 제도에 기대했던 공공성과 품격은 현재 어디에 있는가. 법이 사회와 구성원의 보루가 되려면, 결과의 경로에 관한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인간의 욕망은 시대를 넘어 늘 유사한 속성에 붙들린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