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을 돌보되 사람을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작은 의사라 하고, 사람을 돌보되 사회를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보통의사라 하며, 질병과 사람, 사회를 통일적으로 파악하여 모두를 고치는 의사를 큰 의사라 한다."
요즈음 내가 읽고 있는 책 <닥터 노먼 베쑨>에서 인상 깊은 대목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내 일기장에 위의 말을 이렇게 고쳐 보았습니다. "지식을 가르치되 제자를 돌보지 못하는 선생을 작은 스승이라 하고, 제자를 돌보되 사회를 돌보지 못하는 선생을 보통 스승이라 하며, 지식과 제자, 사회를 통일적으로 파악하여 모두 고치는 선생을 큰 스승이라 한다"라고.
이렇게 고쳐보니 나는 작은 선생이라도 제대로 했는지, 지식은 제대로 가르쳤는지, 혹시 돌보지 못한 제자는 없었는지, 이제는 돌아갈 수도 없는 40여 년 교직 생활이 나를 불러냈습니다. 잘한 것보다 잘못한 일은 없는지 부끄러움에 몸둘 바를 모르게 됩니다. 가르치는 자리에 함부로 서면 안 된다는 엄중함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대통령의 탄핵 사태를 보면서 국가적인 불행 속에서 발견한 우리 사회의 큰 스승의 모습을 찾았습니다. '어른 김장하'의 모습은 단연코 큰 스승의 모습이 분명합니다. 자신의 직업적 사명을 다 하면서 얻은 수익금으로 학교를 세워 국가에 헌납한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학 비리가 넘치는 이 나라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그의 행보는 더욱 빛이 납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가난으로 학업을 잇기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여 나라의 인재를 육성한 사실 또한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성공하여 찾아온 제자에게 "나에게 갚을 것은 없다. 갚을 것이 있다면 이 사회에 갚으라"는 정언 명령은 그야말로 감동적인 대사입니다.
나라가 혼란할 때 영웅이 나타난다 하였는데 그는 영웅을 넘는 시대의 큰 스승이라 칭하고 싶습니다. 질병을 돌보고 사람을 돌보았으며 사회를 돌본 큰 스승, 김장하의 모습은 탄핵 정국에서 만난 최고의 감동이어서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노먼 베쑨은 캐나다 출신 의사로 자신의 직업에 투철한 사명감과 열정을 쏟은 실제 인물입니다. 그 자신이 결핵에 걸려 죽음의 문턱에서 회생한 후, 오직 환자의 아픔에 동참하는 삶을 전개합니다. 환자의 발생은 가난한 사회 구조임을 알고 사회 문제에 까지 뛰어들어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스페인, 중국으로까지 들어가서 항일투쟁과 의료 활동을 펴면서 슈바이처 못지않게 존경받는 의사로서 49세의 나이로 아깝게 생을 마칩니다.
자신의 앞가림만 하는 그런 직업인이 아니라 세상을 보다 넓고 크게 바라보며 자신의 그릇을 닦고 키워 가야 함을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위대한 선각자가 보여준 삶의 행로를 읽으며 느끼는 부끄러움과 자책, 반성과 각오가 나를 거듭나게 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책장을 넘기며 그 감동을 글로 남기고 거듭거듭 읽으며 내 마음에 일렁이는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싶습니다.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 저 시내처럼, 그 작은 학교에서도 아이들의 소리가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분교 아이들에게도 자신을 닦고 기르는 독서 활동을 많이 하게 했던 시간들. 그들의 꿈이 푸르름을 자랑하던 피아골의 뒷산처럼, 교실의 높이보다 더 자란 소나무처럼, 우리 아이들의 생각과 희망도 날마다 커 가던 그때, 산골 분교는 살아남기 위해 날마다 꿈을 꾸던 시간들이 그립습니다.
농어촌 학부모님들이 제기하는 가장 큰 문제인 방과 후 교육 활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전교생 바이올린 배우기, 3학년 이상 사물놀이 배우기, 핸드벨 배우기, 다양한 체험학습 전개로 역동적인 학교로 가꾸어 그 고장의 자랑으로 남기를 바랐습니다. 가진 조건이 불리해도 살아남아 이 사회의 훌륭한 일원이 되기를 바라며 선생님과 학부모, 아이들 모두 행복한 참살이 학교(웰빙 학교)임을 자부하게 되었던 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