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판에서 눈에 띄지 않는 단어가 있다. 바로 '여성', '성차별', '성소수자' 등이다. 우리 사회가 성차별 없는 사회가 됐기 때문에 더는 언급할 필요가 없는 걸까. 지표는 다르게 말한다. 오히려 차별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이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올해 국가성평등지수는 65.4점으로 지난해 66.2점보다 오히려 낮아졌다.
지난해에 비해서 가장 변동폭이 큰 지표는 다름 아닌 '가족 내 성별 역할 고정관념' 인식 수준이다. 60.1점에서 43.7점으로 크게 감소했다. 돈은 남성이 벌어오고, 가사와 돌봄은 여성이 해야 한다는 인식이 늘어난 것이다. 쌍팔년도도 아니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이뿐만이 아니다. 2023년 기준 여성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남성 노동자 임금의 71% 수준에 그친다.
유리 천장은 여전해 높은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여성의 비율은 줄어드는 반면, 비정규직은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다. 데이트 폭력은 매년 증가하고 있고, 이로 인한 사망자 수도 늘어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유력 대선후보의 싱크탱크 주요 인물 중에는 여성이 거의 없고, 토론회에서도 여성, 성차별 등은 금기어나 다름 없는 분위기다.
반면 이번 대선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단어는 인공지능 즉, AI다.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해 AI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발표가 여기저기에서 쏟아진다. AI 토론회를 따로 개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표적인 대화형 AI 챗봇인 ChatGPT에 '페미니즘'의 정의를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까.
"페미니즘은 성평등을 추구하는 사회 운동이자 사상이에요. 기본적으로는 남성과 여성, 그리고 모든 성별이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해요. (중략) 요즘의 페미니즘은 여성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나 남성에게 가해지는 성역할 강요 같은 문제도 함께 다루어요."
"너 페미냐?" 묻는 초등학생 아이들
AI가 알려주는 것처럼 페미니즘은 모든 성별의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주장하는 사회 운동이자 사상이다. 페미니스트는 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상대를 낙인찍기 위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에 잔존하며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는 빨갱이라는 단어처럼 말이다. 점점 극우화 되어 가고 있는 학교에서 "너 페미냐?"라는 물음은 일상적으로 통용된다.
여자대학교에 입학 지원서만 제출해도, 여성이 머리를 짧게 자르기만 해도, 성차별을 언급하기만 해도 바로 질문이 날아온다. "너 페미냐?" 여기서 페미는 페미니스트의 줄임말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묻고 싶다. "너는 페미가 아니냐?"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면 성차별을 옹호하는 차별주의자인 걸까. 그렇다면 대놓고 자신이 차별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초등학생 아들만 두 명을 기르는 엄마로서 페미니스트가 욕으로 변질되고, 성별 고정관념이 두터워지는 세상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여자아이는 페미니스트로 기르기가 상대적으로 쉽지만, 남자아이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초등학교는 교직원에 여성의 비율이 높고,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을 추월하는 모습이 도드라지는 시기다. 사회 전체의 불균형을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이 처한 사회에서만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