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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옷을 입지 마라... 어느 동네의 비극
2025-05-01 19:45:58
정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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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냄새야?"

창문을 열자마자 차 안으로 훅 끼치는 냄새에 나도 모르게 이마를 찡그리고 코를 틀어막는다. 석유 냄새다. 주유소나 새 제품에서 맡았던 냄새와는 조금 달랐다. 온갖 종류의 화학물질이 뒤섞인 것 같은 냄새. 한번 붙으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내 옷과 신발에, 머리카락과 얼굴에 들러붙는 것 같았다. 속이 울렁거렸다. 곧바로 창문을 닫았다.

여수 석유화학 산업단지 앞이었다. 이곳을 사진으로 찍어두고 싶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차에서 내렸다. 눈앞에 거대한 건물들이 위세를 뽐내고 있었다. 땅은 건물과 기계를 감싸는 철조망에 둘러싸여 있었고, 하늘에는 굴뚝에서 뿜어내는 연기와 곧게 뻗은 전선들이 질주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풍경 속에 서자마자, 코를 쥐게 하는 냄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쉽게 냄새에 익숙해졌다.

굴뚝에서 마을까지 500m... 암 환자가 늘어났다


다크투어. 죽음이나 재난과 관련된 위험 발생 지역을 방문하는 관광으로 역사교훈여행으로도 불린다. 여수 석유화학 산업단지(아래 여수산단) 다크투어를 기획한 곳은 하동참여자치연대(아래 하참). 하참의 최지한 대표는 광양만(광양, 순천, 여수, 하동, 남해로 둘러싸인 동서 거리 약 25km, 남북 10km의 항만) 지역의 환경문제를 체감하고 2023년 처음 다크투어를 시작했다.

다크투어는 하동화력발전소에서 시작해 광양제철소와 여수산단을 돌아보고, 준설토 매립지인 묘도를 지나 하동 섬진강으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기획되었다. 여수산단과 광양제철소는 한국 경제성장의 중심지이면서 다이옥신, 벤젠 같은 유해물질의 원천이기도 하다. 다크투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산업단지 풍경만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의 삶에 귀를 기울인다.

한국남부발전 하동화력발전소를 보기 위해 갈사만으로 갔다. 발전소가 보이는 곳은 칡뿌리처럼 생겨 갈도라 불리던 섬이었다. 1964년 간척사업으로 제방이 들어서면서 바닷길이 막혔고 갯벌에 기대 살아가던 사람들은 일터와 양식, 썰물 때마다 파도가 내는 나팔 소리를 잃었다.

이후 광양에 제철소가 들어섰다. '강 건너 광양은 부자'가 되었고, 갯벌을 잃고 먹고 살길이 막막했던 하동 사람들은 제철소로 일을 다녔다. 하동 사람들은 제철소가 하동에 들어오지 않은 게 못내 속상했다. 4년 뒤 하동에는 화력발전소가 들어섰다.

"샛바람이 불면 화력발전소, 갈바람이 불면 광양제철소, 마파람이 불면 여수LNG에서 새까만 게 날아와."( 하동주민생활사연구회, 갈도를 기록하다, 2023)

마을 사람들은 흰 옷을 입지 못했다. 문을 열지 못했고, 빨래를 널지 못했다. 비라도 오는 날은 '시커먼 게 얼마나 많이 내려오는지 락스를 부어' 옷을 빨아야 했다. 강물에서 재첩을 태산같이 잡았던 곳, 김 양식으로 유명해 황금바다로 불렸던 갈사바다는 이제 '암 환자가 그리 많단다, 여기가' 하는 곳이 되었다. 대신 광양제철소가 황금산단이라 불렸다.

최지한 대표가 굴뚝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굴뚝에서 마을까지 500미터 거리거든요. 발전소 지을 때 반경 1km 이내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고 환경영향평가서에 보고를 했어요. 그때 마을 사람들이 굉장히 큰 상처를 받으셨어요. 우리는 사람이 아닌가? 발전소는 집집마다 공기청정기를 바꿔주고 최선을 다한다고 말해요. 기만으로 느껴지는 거죠. "

최신형 공기청정기에도 마을 사람들은 암에 걸렸다. 이곳에 살면 암에 많이 걸린다고, 자녀들은 절대로 이곳에 살면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도 '제철소가 효자'라고, 더는 고된 김 양식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고, 하동이 발전하려면 산단이 들어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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