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크
파이낸셜경제
곰과 닭
2025-05-12 21:25:20
유신애 칼럼니스트
  •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 카카오톡으로 공유하기
  • 트위터로 공유하기
  • url 보내기



어떤 클래식 음악들은 처음 듣더라도 이상하게 또렷이 기억되는 것들이 있어요. 애칭이 있을 때가 그 경우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예로 하이든의 음악 중 ‘곰’, ‘암탉’이라고 불리는 교향곡들이 있지요.

하이든의 <교향곡 82번, ‘곰’>과 <교향곡 83번, ‘암탉’>은 ‘파리 교향곡’에 속해 있어요. 파리 교향곡은 총 6개이고, 82번부터 87번까지가 해당하는데요. 파리의 콩세르 드 라 로즈 올랭피크 오케스트라에서 의뢰를 받아 만든 작품들이에요. 하이든은 6개의 작품들을 1785년과 1786년에 걸쳐 만들어 판매 수익을 얻고요.

파리 교향곡은 하이든의 전성기를 대변하는 작품이에요. 파리 교향곡에 연이어 탄생한 ‘런던 교향곡’도 하이든 인생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끈 교향곡입니다. 특히 런던 교향곡은 그동안 하이든이 살면서 벌어왔던 돈보다 더 많은 돈을 한방에 벌게 해 준 효자상품이에요.

그런데 이들 작품들을 만들고, 인기까지 얻을 수 있던 배경에는 다름 아닌 ‘근로계약서’가 있었습니다. 하이든이 그동안 궁정 작곡가 겸 지휘자, 음악감독으로 일해왔던 에스테르하지 궁에서 그의 근로계약서 조항을 바꾸면서 가능해진 일이죠.

하이든이 에스테르하지 궁에서 연주될 음악 작품들을 꾸준히 만들며, 가문을 통해 인맥까지 넓히는 동안, 에스테르하지 궁 밖에서는 하이든의 음악을 갈구하는 청중들이 생겨나요. 그의 음악이 듣기 좋다는 소문이 널리널리 퍼진 거죠. 인기가 대단해서 하이든의 가짜 악보들이 시중에 팔릴 정도였어요. 이에 에스테르하지 가문은 하이든의 작품을 외부로 판매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합니다. 궁 밖에서도 하이든의 음악을 접할 수 있도록 악보 출판도 할 수 있게 된 거죠.

‘곰’과 ‘암탉’은 이 흐름상에서 태어납니다. 작품에 붙은 별명들도 하이든이 직접 붙인 것이 아니에요. 많은 경우가 그렇듯 판매율을 높이려는 출판사와 청중들이 붙여준 애칭들입니다.

하이든이 살던 당시에는 길거리를 떠돌며 물건을 판매하던 상인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 위해 곰을 데리고 다녔어요. 곰의 춤이 있으니 음악도 빼놓지 않았죠. 이때 주로 백파이프 반주에 곰이 춤을 췄다고 해요. <교향곡 82번>의 4악장은 저음에서 지속되는 음들이 백파이프 소리를 연상시켜요. 그러면서도 선율이 곰의 춤을 떠올리게 한다는 의미에서 ‘곰’이라고 불렸습니다.

▲ 하이든 : <교향곡 82번, Hob I:82, ‘곰’>, 4악장

‘암탉’은 1악장 중 오보에의 소리에서 유래한 별명입니다. 두 번째 주제에서 오보에가 부점을 연주하는데 마치 닭의 울음소리를 묘사하는 것 같아요. 점이 붙은 음표 뒤에 꼬리가 하나 달린 짧은 음이 이어 붙는 것을 부점이라고 하는데요. 길고 짧은 음이 반복되는 부점이 같은 음에서 머무르며 약간 긴 듯한 시간을 채워요. 닭이 계속해서 ‘꼬꼬’거리는 것처럼 말이에요.

▲ 하이든 : <교향곡 83번, Hob I:83, ‘암탉’>, 1악장

한편, 콩세르 드 라 로즈 올랭피크는 파리의 새로운 오케스트라로, 규모가 에스테르하지보다 컸어요. 풍부한 음향으로 하이든의 음악을 연주할 수 있었죠. 하이든도 팀파니를 추가하기도 하고, 화려하고 우아한 선율을 자연스럽게 녹여 효과를 봤어요. 파리 청중들은 열광했고요.

사실 ’곰‘과 ’닭‘은 서로 친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이 동물들은 서로 비슷한 점도 찾기 힘들 것 같은데요. 하이든의 파리 교향곡 중 선율로 설명할 수 있는 동물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네요. 더불어 애칭이 있다는 점은 파리 청중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음을 방증하는 듯합니다.

주요뉴스
0포인트가 적립되었습니다.
로그인하시면
뉴스조회시 포인트를 얻을수 있습니다.
로그인하시겠습니까?
로그인하기 그냥볼래요
맨 위로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