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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말 잘하시네요"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 비수가 되다
2025-05-03 19:29:48
이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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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 청년 10명 중 9명은 사투리나 지역 출신을 이유로 차별 피해를 경험한다고 응답했다.(희망제작소, 2021)"

부산 토박이인 나는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파이다(나쁘다)', '매매(구석구석)', '대다(힘들다)' 같은 말이 툭 튀어나온다. 내 말을 듣고 악의 없이 웃는 사람도 있다. 처음에는 가벼운 웃음이라 여겼지만, 때로는 낯선 대상에 대한 무의식적인 경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웃음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과거 SNS에서 틱장애 환자의 증상을 과장한 영상이 유행하며 장애를 희화화했다. 비웃음과 조롱은 웃음이라는 이름으로 감춰져서 차별이 되기도 한다.

개그맨은 누군가의 곤란한 상황이나 자기 비하로 웃음을 만든다. 몸집이 큰 개그맨이 자기 비하를 개그 소재로 자주 사용하면, 비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만든다. 그런 장면은 결국 비만을 차별 대상으로 만드는 데 영향을 끼친다.

사투리도 개그맨이 자주 사용하는 웃음 소재다.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그 표현의 대상이 겪는 감정도 고려해 보면 어떨까? 말투 때문에 '차별 피해를 경험'하는 상경 청년들, 나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서울로 상경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 말투에선 경상도 사투리가 묻어난다. 일부 사람은 내 사투리를 듣고 웃거나 놀린다. 사투리가 재밌다며 계속하라고 시키는 경우도 있다. 방송을 하는 사람 중 일부는 "사투리 좀 고쳐"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내 말을 듣고 웃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말수가 줄어들었다. 사투리는 정말 좋지 않은 걸까?

그나마 나는 다행인 편일지도 모른다. 부산 사투리를 쓴다고 부산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는 특정 말투를 쓴다는 이유로 극우 집회 현장이나 일상 공간에서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같은 모욕을 듣는 이들도 있다.

이쯤 되면, 차별은 단순한 농담이나 웃음을 넘어 공격으로 이어진다. 결국, 함께 살아가는 지역에서 누군가를 내쫓으려는 시도까지 일어난다. 한국 사회는 말투로 인종 차별의 기준을 삼으려 하고 있다. 나는 이 현상을 '언어 차별'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제부터 지역과 지역어에 존재하는 언어 차별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작게 쌓이는 먼지 차별, 말투가 남긴 상처

신문에서는 사투리 소멸 위기를 경고한다. 그럼에도 버스 정류장에서 사투리를 사용하는 순간, 서울 사람의 시선이 느껴지는 걸 보면, 지역어의 뿌리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일상 속 작은 차별이 쌓이는 것을 '먼지 차별'이라고 부른다. 먼지 차별이란 먼지처럼 작고 사소해 보여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일상에서 쌓이면 결국 큰 상처가 되는 차별을 뜻한다.

예를 들어 "지방에서 왔는데 서울말 잘하시네요", "경상도 사람 무섭지 않아요?"처럼 악의가 없더라도 반복되면 마음의 먼지처럼 상처가 쌓인다. 즉, 먼지 차별은 꼭 다른 이를 심하게 비난하거나 의도적으로 차별하지 않아도,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아픈 상처가 될 수 있다.

표준말을 쓰는 친구가 내 말을 듣고 농담처럼 말했다. "발표할 때 사투리 쓰면 전문성 없어 보여." 친구의 가벼운 농담은 부산 토박이인 내게 날카로운 칼처럼 꽂혔다.

실제로 사투리 때문에 무시당하는 기분을 느끼고, 스피치 학원에서 회당 5~8만 원이라는 비용을 내고 표준어 교정 수업을 받는 경우가 있다. "사투리는 매력적이지만, 공적 영역에선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사회 분위기가 먼지 차별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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