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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 남편 장례식에 초청받지 못한 아내
2024-05-01 20:23:45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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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이가 없는 작곡가가 몇 있다. 클래식을 넘어 음악의 부모에까지 비견되곤 하는 바흐와 헨델,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는 모차르트, 그만큼이나 유명한 베토벤 같은 이들이다. 클래식 음악만 놓고 보면 그 탄생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방에 불과한 한국이지만, 전 국민이 적어도 이름쯤은 알고 있는 작곡가가 또 한 명 있다. 러시아 제국 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러시아 음악가로 꼽히는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가 바로 그다.

동화를 바탕으로 차이콥스키가 직접 작곡한 발레곡 '호두까기의 인형'은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발레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남았다. 어찌나 유명한지 러시아와의 냉전 동안에도 미국의 내로라하는 발레단들이 이를 대표곡으로 써왔을 정도다. 미국 뿐 아니라 한국과 세계 여러 나라 발레단은 크리스마스 시즌을 중심으로 한 소위 대목에 이 작품을 올린다. 자연히 발레단 수입 상당부분을 호두까기의 인형이 차지할 밖에 없는 일이다.

그만큼 유명한 차이콥스키지만 그의 삶은 유명세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차이콥스키의 사생활이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았다는 것, 그리하여 모국인 러시아가 그를 널리 알리려 들지 않았다는 것, 차이콥스키는 물론 그 주변인들까지도 작품 이외의 면모가 조명 받는 걸 피하려 들었다는 것, 그 모두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테다. 그리고 그 중심엔 차이콥스키가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이 자리한다. 동성애자 혐오의 시대, 동성애자로 살아야 했던 천재음악가의 삶은 그 시작부터 비극으로 점철될 밖에 없는 것이었다.

혐오의 시대가 만든 부부의 비극

혐오의 시대는 또 다른 비극들을 낳기 마련이다. 차이콥스키의 아내, 세상에 얼마 알려지지 않은 그의 짧은 결혼생활이 낳은 비극도 그중 하나다. 차이콥스키는 37살이던 1877년 안토니나 밀류코바와 결혼식을 올린다. 요즘에야 37살에도 결혼을 하지 않은 이가 많지만 당시로선 주변에 30대의 미혼남을 찾아보기 어렵던 때가 아닌가. 심지어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던 유명 작곡가가 갑자기 결혼을 하니 세상이 떠들썩했던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오래 가지 못한다. 채 석 달도 되지 않는 짧은 결혼생활 뒤 차이콥스키가 도망쳐버리며 결혼은 파탄으로 접어든다. 어쩌면 자연스런 결과인 그들의 갈라섬은 그러나 법적으론 바로 이뤄지지 못했다. 당시 러시아의 법체계가 종교의 보호를 받는 결혼계약의 해제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었고 아내가 이혼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이콥스키는 마침내 이혼을 포기했고 법적으로 아내에게 매달 상당한 금액을 건네는 것으로 그 결혼의 파탄을 세상에 알리지 않았다.

2019년 작 <레토>로 세계 영화계에 제 존재를 알린 키릴 세레브렌니코프가 프랑스 제작사와 손잡고 만든 <차이콥스키의 아내>는 짧았던 차이콥스키의 결혼생활과 그 아내가 겪어야 했던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

남편의 장례식에 초청받지 못한 아내

영화는 장례식으로부터 시작한다. 다름아닌 차이콥스키(오딘 런드 바이런 분)의 장례식이다. 그의 아내라고 말하는 안토니니 밀류코바(일리오나 미하일로바 분)가 그의 장례식을 찾으려는데 어딘지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는 남편의 장례식을 주관하는 유족이 아닐뿐더러 그 장례식에 초청받지도 못한 것이다. 그는 장례식에 모여든 인파를 헤치고 제가 미망인임을 알리며 겨우 차이콥스키가 누운 방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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