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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명에게 문자 보내며 80일간 '비움실천', 반응이 왔다
2024-05-02 20:32:16
김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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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든다는 건 어쩌면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나만의 관점을 형성하는 과정일 것이다. 친구 혹은 동료라는 이름의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나와 다른 사람과는 멀어지거나 적어도 예민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애매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내가 그랬다.

핵발전 관련 일을 하는 사촌 형과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핵발전을 지지하는 사람을 만나면 마치 꿈쩍 않는 벽과 대화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그들을 먼저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싸우고 설득시켜 끝끝내 굴복시켜야 할 존재로 바라봤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다 나는 누군가를 왜 그리도 미워하거나 두려워하는 어른이 되었나. 나이가 든다는 건 어쩌면 '동료 시민'을 적으로, '다름'을 틀림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아주 좁고 작은 창문들을 더 많이 갖게 되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일까, 페이스북에서 웃으며 순례하고, 운동하고, 연대하는 한 사람의 글과 사진에 눈길이 갔다. 청명이었다. 몽블랑에서도, 길거리에서도, 그를 잘 아는 사람만이 아닌 처음 보는 사람과도 웃으며 그 순간을 즐기는 듯했다.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는 어떻게 바쁜 삶 속에서 탈핵 운동을 하고, 다양한 활동과 실천을 지치지 않고 하는지. 어떻게 '즐겁지만은 않은 일들을' 웃으며 할 수 있는 걸까. 그는 어떤 창문으로 이 사회와 사람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탈핵잇다 시즌2, 첫 번째 주인공은 바로 청명이다. 4월 23일 청주충북 기후순례를 마친 그와 약 1시간 반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활동명을 만들자고 제안한 이유

그의 이름은 장미영, 그러나 페이스북 계정은 '청명'이라는 활동명으로 만들었다. 순례할 때 다양한 사람을 만나 자기소개를 주고받았지만,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본인'을 설명할 때조차 계급과 권력이 드러났다.
계급적인 발언을 하거나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 큰 차이가 있었어요. 가령, 교수님이 하는 말에는 모두가 다 괜찮다고 생각했고, '님'이 붙는 직업과 '님'이 붙지 않는 직업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서열, 계급, 권력을 없애기 위해 제일 먼저 활동명을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그의 자녀가 다니던 실상사 작은학교는 '농사'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고 기본적인 공부 중 하나였다. 학생들은 절기가 적혀 있는 달력을 가지고 있었고 자녀의 방에도 그 달력이 걸려 있었다. 그는 예로부터 농사를 시작하는 중요한 날인 '청명'으로 정했다. 그의 삶과 운동에서 '농사'는 그를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급자족하게 만드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물론 자본주의 시스템하에서 완전히 벗어나 사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로서 온전히 살아가는 삶을 만들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들 눈에는 힘들어 보이지만 제가 택한 즐거운 삶인 거죠.

탐욕을 미덕으로 여기게 만드는 자본주의하에서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 청명에게 중요한 농사를 먼저 물어보았다. 그는 특이하게도 '섞어짓기'라는 이름의 농사를 짓고 있었다. 이것저것 막 섞어서 농사짓는다는 의미일까? 너무도 낯선 '섞어짓기'가 무엇인지 먼저 물었다.
농사도 제 에너지로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텃밭을 가꾸고 있어요. 그 이상을 한다면 그건 또 다른 욕망이고 욕심이겠죠. 현재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시스템 중 30%를 이 텃밭으로 만들고 있어요. 먹고 살기 위해 섞어짓기 방법을 사용했죠. 섞어짓기를 통해 30평의 땅도 60~70평처럼 사용할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작물들 사이에도 서로 이롭거나 해로운 작물이 있다는 거예요. 궁합이 잘 맞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작물, 자연 그리고 숲에도 궁합이 있어요.

청명은 고랑과 이랑을 만들어 틀이나 경계를 만들지 않고, 조화롭게 작물들이 커가는 환경을 만들었다. 약을 안 치기 위해 토마토를 부추랑 같이 심었다. 허브를 심으면 벌레를 쫓아 주기 때문에 다른 작물들 중간중간에 심기도 하였다. 서로 도움이 되는 식물들 위주로 심었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 식물도 다른 곳에 따로 심었다.
안 맞는다고 기피하고 배제할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심으면 돼요. 그들도 저의 텃밭을 이루는 하나니까. 사람 사는 것과 똑같아요. 나랑 다르다고 해서 비난하고 배제해 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다름을 인정하는 거죠. 섞어짓기란 저에게 '섞어서 살아가기'와 같아요.

'자유인'이 되기 위해 그에게 필요했던 건 비움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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