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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개승만이가 일을 많이도 했다" 학살 피해자 유족의 탄식
2024-05-09 09:56:27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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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개승만이가 일을 많이도 했다. 개승만이가 수장해야지, 또 매장해야지, 이 일을 얼마나 많이 했노."

창원마산 진전면 여양리 민간인 학살지에서 나온 유골을 본 유족 성증수 할머니가 분통을 터뜨리며 했던 말이다. 구자환 다큐감독이 최근 펴낸 책 <빨갱이 무덤(레드툼)>(도서출판 '삶창' 간)에서 소개한 내용이다.

<민중의소리> 기자를 지낸 구 감독은 민간인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레드툼>, <해원>, <태안>에 이어 제작 중에 있는 <장흥 1950>을 다루면서 알게 된 아픈 역사를 320여쪽의 책에 담았다.

여양리 민간인 학살지는 2002년 8월 태풍(루사) 때 토사가 유출되면서 무연고 유골이 다량 발견됐다. 억울하게 떼죽음을 당한 지 반세기가 지나 피학살자들이 마치 '나 여기 있소'라고 하듯, 폐광과 너덜겅에서 유골이 나온 것이다.

고 이상길 경남대 교수가 2004년 수습한 유골은 180~200여구였다. 이들은 진주지역 보도연맹원 등 민간인들이었고 재판 등 절차도 없이 국군에 의해 학살 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발굴 현장을 취재했던 구자환 감독은 수습된 유골을 본 성증수 할머니가 "아이고, 어디 가서 이 한을 풀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태풍으로 드러난' 여양리 학살 현장은 책에서 "하늘도 무너지고 땅도 꺼지던 그 해 6월"이라는 제목으로 담겨 있다. 성증수 할머니가 언급했던 '개승만'은 이승만을 뜻한다.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정부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다. 단지 '빨갱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좌익이 뭔지도 모르고 가입하라고 해서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했다가 불려나가 학살당했다는 증언은 이 책 전체에 걸쳐 되풀이된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한국전쟁 전에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음을 이 책은 고발하고 있다.

"진주 사봉면 대곡리 이혜기 할머니도 당시 스물한 살이던 남편을 잃었다. 남편은 좌익이 무엇인지 우익이 무엇인지 몰랐다. 동네 사람들이 한번 가 보자고 해서 갔던 길에 보도연맹에 가입했다. 그 일이 비극이 될 줄 몰랐다. 남편은 1950년 음력 6월 1일 동네 사람들과 회의하러 간다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학살의 방법이나 희생자의 처리 방식도 충격적이다. 동네 주민들에게 희생자들을 매장하게 하거나 아예 수장하기도 했다. 창원마산 진전 앞 괭이바다가 대표적 수장지다. 수장된 희생자들의 시체가 대마도까지 떠내려 간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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