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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기레기'라 아무리 욕해도 해결되지 않을 문제
2024-05-09 15:06:29
김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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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사회적 참사라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언젠가 사고를 주로 취재하는 기자가 내게 이런 푸념을 털어놓았다. 그는 자신이 속한 진보성향매체의 독자 중에도 '이태원 참사는 길 가다가 죽은 사고인데 왜 국가가 책임져야 하냐'고 하는 이들이 있다며 '사람들이 자연재해와 사회적 참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고민을 말했다.

나는 물었다.

"사회라는 것 자체가 점차 흐릿해지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요?"

계급, 지역, 젠더, 정치적 견해의 차이 등으로 갈가리 찢겨 각기 저마다의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을 하나로 묶는 '사회'가 오늘날에도 정말로 존재하는가, 사회 자체가 없어지고 있다면 어떤 사고를 사회적 참사로 인식하는 감각 또한 약해질 수밖에 없지 않냐는 질문이었다.

저널리스트 김인정의 <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읽으면서 나는 몇 달 전에 나눈 그 대화를 떠올렸다. 누군가의 고난과 불행을 대면하는 직업을 가진 이로서, 그는 '우리'라는 공동체가 흐릿해지는 시대에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이 책은 그런 고민과 치열한 성찰의 기록이다.

'논란'의 소셜미디어 영상... 방송뉴스는 얼마나 다른가

이야기는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당시 소셜미디어에 유포된 영상들에서 시작한다. 사람들이 구조를 기다리며 손을 뻗는 모습, 심폐소생술을 받는 모습, 희생자의 얼굴을 천으로 덮어둔 모습 등 당시 상황을 적나라하게 담은 영상들이 널리 퍼졌다.

영상에 찍히지는 않았지만, 영상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 이들도 있었다. 누군가 바로 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이들, 이 참사를 흥밋거리로 여기며 '구경'한 이들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구경꾼들을 쉽게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의 영상이, 평소 언론사가 방송으로 내보내는 영상과 얼마나 비슷하고 얼마나 다른지를 묻는다. 사람들이 평소 방송 뉴스에서 봤던 영상을 '학습'한 것은 아닌지 반문한다. 이런 영상을 쓰지 않겠다는 언론사들의 결정에 동의하면서도 "일견 공범자가 손을 터는 듯한 위화감을 느꼈다"(28쪽)고 고백한다.

이태원 참사가 아니라도 '고통의 윤리적 재현'이 문제가 되는 현장은 무수히 많다. '볼 만한 그림'을 뽑아내기 쉽다는 이유로 날씨는 쉽게 뉴스가 되지만, 기후 위기는 기획 기사나 큰 현안이 아니면 뉴스가 되기 어렵다. 똑같은 산업재해 피해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병을 앓는 이들보다는 사고를 당해 '보이는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이 카메라를 자주 받는다.

그중에서도 마음에 무겁게 남은 사례는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당시 자주 보이던 '5.18 민주화운동과 비슷하다' '홍콩 시위대가 우리가 30여 년 전에 이미 쟁취한 민주주의를 부러워하고 있다' '<1987>과 <택시운전사>가 홍콩에서 인기'라는 류의 기사를 볼 때마다 왜인지 마음 한구석이 긁혔다며 이렇게 묻는다.
"해외 뉴스는 '우리'와 정서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연결되어야만 의미 있어지는 건지. 그렇다면 먼 거리에 있는, 통역에 실패한, 바다를 건너오지 못하는 고통은 어떤 포지션에서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어째서 타국의 시련을 전달할 때는 고통의 현지화가 필요한지." (175쪽)

나도 해외 뉴스를 보다가 비슷한 고민을 했던 적이 있어서이 대목에 오래 머물렀다. 가끔은 우리와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한 시도가 지나치다고 느꼈을 때 들었던, '그들을 너무 우리의 거울로만 여기는 것은 아닌가?'라고 의심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게 단지 조회수 장사, 매체들만의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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