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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시장, '고담 도시' 완결판 만들려는 것인가
2024-04-30 12:05:34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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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홍준표 대구시장이 갑자기 동대구역과 대구 대표 도서관 앞 광장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겠다고 하는 바람에 대구가 시끄럽다. 홍 시장은 과거 경남도지사 시절 안 그래도 부족한 도립의료원을 없애 지탄받더니 이번에는 시대착오적 박정희 동상을 거론함으로써 그의 판단력과 역사의식이 어떤 수준인지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다.

박정희 동상을 동대구역과 도서관 광장에 세운다면 자라는 아이들이 뭘 배우고 뭘 느낄까? 박정희 동상이 어불성설인 10가지 이유를 아래에 제시한다.

[#1] 친일파

첫째, 박정희는 친일파 중의 친일파다.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로 창씨개명했고, 만주군관학교 입학을 위해 일왕에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를 썼다. 조갑제가 박정희를 찬양하기 위해 쓴 책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보면 박정희는 수시로 일본말을 했고 5.16 새벽 쿠데타군 출동명령조차 일본말로 했다. 강창성 보안사령관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대통령 박정희가 일본군 복장을 하고 있더라는 증언도 있다.

홍준표 시장이 박정희 동상을 세우겠다고 하는 동대구역 앞으로 히말라야시이다 나무가 일렬로 죽 서있는데 이것은 박정희가 좋아해서 심은 것이고, 박정희가 그 나무를 좋아한 이유는 그 나무가 일본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서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니 박정희의 정신적 고향은 언제나 일본이다.

박정희는 미국 방문시 잠시 들른 일본에서 자기는 막부 말기 유신 지사들을 존경한다는 말도 했다(나중에 10월 유신이라는 표현도 여기서 빌려왔다). 박정희는 대구사범학교, 만주군관학교, 일본 육사에서 받은 군국주의 황민화 교육의 충실한 추종자였다. 똑같은 교육을 받고도 일본 제국주의에 반감을 갖고 민족운동을 하다가 제적당한 동기들도 많았는데 박정희는 민족의식이 없었다.

장준하 선생의 증언에 의하면 해방 직후 만주군 소속 한국 군인들이 만주에 모여 입국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광복군 출신 장준하가 뭐라고 지시를 하면 "하이! 하이!"하며 일본말로 대답하는 새카맣고 키 작은 군인이 있어 뭐 저런 인간이 있나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게 바로 박정희였다는 것이다.

장준하 선생이 1960년대 대중강연에서 이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대통령에 출마할 자격이 있지만 박정희 한 사람만은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1975년 장준하 선생은 북한산 등반 도중 의문사한 시체로 발견됐다. 머리에서 계속 피가 흘러 이상하게 여겼지만 그냥 매장했는데 먼 훗날 이장할 때 보니 두개골에 큰 구명이 뻥 뚫려 있어 타살임이 명백해졌다.

[#2] 기회주의자

둘째, 박정희는 보기 드문 기회주의자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에 붙어 충성을 맹세했고, 해방 후 좌파 세상이 올 것 같으니 좌파에 가담했다. 해방후 대구 남로당에서 활동할 때 박정희는 대구사범학교(현 경북대 사대부중) 본관 2층 발코니에 대포를 설치해 길 건너 남대구경찰서를 깨부수자고 제의를 한 적도 있다.

박정희는 남로당에서 활동하던 중 여순반란 사건 이후 군부 내 좌파 숙청 작업에서 발각돼 끌려간 곳이 이승만이 총애했던 악질 친일파 방첩대장 김창룡 앞이었다. 주변에는 고문에 신음하는 소리가 진동하고 있었다. 박정희가 김창룡 앞에 앉자마자 고문을 받기도 전에 대뜸 한 첫 마디가 "내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습니다"라며 동지들 이름을 죽 적어 내려갔다.

그는 수많은 동지들 이름을 적어냈는데 명단 제출만으로는 부족해 김창룡이 박정희를 데리고 감방을 돌았다. 박정희가 말없이 눈짓 손짓으로 지목한 사람은 모두 사형당했다. 이렇게 해서 박정희 때문에 목숨을 잃은 옛 동지들이 100명이 넘는다. 200~300명이라는 설도 있다.

[#3] 무한 권력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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