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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세에 회사 잘리고 인생2막 성공... "두 가지만 있으면 된다"
2025-07-20 18:31:38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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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대기 발령이 현실이 된 것은 그가 마흔아홉 되던 해인 2017년 가을이었다. 대기 발령이라는 게 회사를 그만두라는 압박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 막막하고 두려웠다. 잠을 이루지 못해 아침만 되면 머리가 천근만근 무거웠다.

이듬해 중3과 고3이 되는 아이들에게는 든든한 아빠가 절실한 시기였다. 이제 그런 아빠가 될 수 없다는 생각만 하면 어깨가 한없이 밑으로 처졌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불안해 할까 봐 내색조차 할 수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깨 쭉 펴고 입가에는 미소까지 머금어야 했다. 직장에서 쫓겨나는 40대 대한민국 가장의 고달픈 현실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 아직 젊고 건강해." 무던한 아내. 이렇게 위로하며 태연한 척 연기 했지만 얼굴에 흐르는 불안감은 숨기지 못했다.

장시춘, 당시 그의 직장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 유통회사. 그의 직책은 지점의 총책임자인 '점장'이었다. 부하 직원만 해도 수십 명이나 되는 현장 관리자다. 고민 끝에 점장의 체면과 남자의 자존심까지 잠시 내려놓고 '1년만 미뤄달라'고 회사에 사정 했지만, 회사는 냉정하기만 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유통 분야에서 23년을 일해 왔어요. 물론 제가 선택한 길이었고요. 대기 발령을 받을 만한 잘못이나 실수는 없었어요. 그 분야 전문가이고, 내 딴에는 고급 인력이라 자부하며 살았는데 회사에서 볼 때는 그저 월급 많이 줘야 하는 시니어 직원이었던 거죠. 빨리 내보내야 회사에 이익인 그런 직원."

이 말을 할 때 그의 표정은 무척 어두웠다. 8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 그때 받은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고객을 상대하는 일을 해서 그런지 이때를 제외하고는 시종일관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지난 9일 오후 충청남도 예산시장 거리에 있는 봄봄 방앗간을 방문해 장시춘(57)씨를 만났다. 백발에 혈색 좋아 보이는 불그스름한 안면. '편해 보인다'라고 말하자 그는 "마음이 편해서 그런지 오랜 기간 보이지 않던 검은 머리도 간혹 보인다"며 확인이라도 시키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정수리 부근 백발 사이에서 검은 머리가 자라고 있었다.

<농민신문>에 귀촌 성공 사례로 소개됐는데, 정작 그는 "제가요?"


그가 운영하는 봄봄 방앗간은 성공적인 귀촌 사례로 꼽히는 사업체다. <농민신문>과 예산 지역 언론, 한국농어촌공사 등이 앞다퉈 소개할 정도로 유명하다.

봄봄 방앗간은 간편 식사 대용식인 쪄서 만드는 귀리가루, 쑥 미숫가루 등을 판매하고 있다. 또 쪄서 짜는 전통식 생 들기름, 법제 호두기름, 전통 곡물을 활용한 미용팩 등도 만든다. 고추씨 가루도 분쇄·판매하고, 구운맛 현미 들깨 가래떡도 만들어 팔고 있는데, 들깨 가래떡이 인기가 높다는 게 장 대표 설명이다.

특히 그는 농약 등에 오염되지 않은 안전한 쑥을 얻으려 직접 기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생명력이 강해 아무리 척박한 환경이라도 쑥쑥 잘 자라서 '쑥'이라 이름 붙여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잘 크는 식물이라 직접 키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들이나 산에서 자라는 쑥을 필요한 만큼 베어오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예산 인근 대술이란 곳에 땅까지 얻어 쑥 농사를 짓는다.

"봄봄 방앗간 주력 상품이 쑥 미숫가루라 쑥이 많이 필요했어요. 쑥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사람들이 많이 웃었어요. 비웃음이죠. 천지가 쑥인데 무엇 하러 땅까지 얻어 힘들게 농사를 짓느냐는 의미가 담긴 웃음이죠. '저 사람 혹시 바보가 아닐까' 상상하는 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쑥을 직접 채취하려면 만만치 않아요. 쑥이 어디에 많이 있는지 서울 촌놈인 저로서는 알 수가 없었고요. 과수원 주변에 쑥이 많은데 그 쑥은 과수원에서 주는 농약에 노출돼서 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제주도 등에서 쑥을 사서 썼어요. 그러다가 물 좋고 공기 좋은 예산에서 직접 길러보기로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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