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주인공 우성(강하늘)은 퇴직금 중간정산과 원룸 보증금, 직장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 한도 대출, 심지어 엄마의 마늘밭까지 팔아서 아파트를 장만한다. 이 과정이야말로 소위 '부동산 불패', '역사적으로 부동산은 우상향'이라는 한국 사회에 들끓는 욕망을 고스란히 반영한 결과물이다.
'영끌'이라는 단어가 이제 일상적인 단어로 바뀐 시대에서 내 집 마련은 더 이상 소박한 꿈이 아니라 사회적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처럼 여겨진다. 김태준 감독의 < 84제곱미터 >는 이런 절박함에서 출발해서 욕망의 근원, 나아가 그 욕망이 진정 우리의 것인지를 물어보려 한다.
욕망의 기준선, 84제곱미터
84제곱미터라는 숫자는 한때 '국민주택 규모'로 불렸던 공간이다. 1970년대 정부가 4인 가구의 쾌적한 거주를 위한 최소 기준으로 설정한 복지적 개념이었고 아직까지도 이 크기를 '국민평형'이라 부른다. 최소 기준에서 사회적 성취의 지표로, 보장해야 할 권리에서 마땅히 달성해야 할 목표로 의미가 전환된 것이다.
우성에게 '영끌'로 얻어낸 11억짜리 아파트 등기는 '이제 나도 성취를 이뤄낸 사회 구성원'이라는 증명서다. 이때 패티 킴의 '서울의 찬가'가 배경음으로 깔리는 장면은 아이러니 그 자체다. 서울을 향한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은 1969년의 노래는 영화에 사용되면서 그 의도가 다르게 들린다. 소박한 삶을 향한 찬가는 부동산 불패의 선두에 있는 서울살이를 성공했다는, 생존경쟁에서 승리했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11억짜리 생존을 해냈다는 말의 역설이다.
한국영화에서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인물들이 각기 다른 욕망을 품고 있다는 설정은 익숙한 방식이다. 아파트 펜트하우스 입주민 대표 은화(염혜란)에게 아파트는 자산 가치를 올릴 수 있는 투자 대상이다. 그는 GTX 개통 같은 정책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아파트 단지 전체의 '브랜드 가치'를 관리하고자 한다.
우성의 윗집 남자 진호(서현우)의 욕망은 모호하지만 후반부에 드러나는 욕망은 한국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특유의 도덕성이 심하게 뒤틀린 결과물이다. 우성의 아랫집에 사는 부부는 전세 기간을 연장하고 싶어서 특정한 행동을 일삼는다. 이들을 한데 엮은 층간소음이라는 장치는 서로 다른 욕망들이 충돌하는 지점을 가시화한다. 밤마다 쿵쿵 울리는 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아파트를 둘러싼 욕망들의 불협화음처럼 들린다. 우성이 소음의 원인을 찾아 위로 올라가는 과정은 아파트를 위시한 한국사회 욕망의 위계를 탐색하는 추적극 같기도 하다.
< 84제곱미터 >가 짚어내는 사회의 현실적인 욕망과 공포는 예리하다. 우성은 스스로 층간소음의 피해자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다른 주민들로부터 소음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의심 받는다. 이 역설적 상황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처한 딜레마를 정확히 보여준다. 누구나 동시에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구조, 그리고 그 구조 안에서 진정한 책임자를 찾기 어려운 현실 말이다.